100원을 굴려 1000원을 만드는 것 보다 1만원을 굴려 1000원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듯 요즘 산업계에서는 두 업체 혹은 세 업체 이상을 흡수·합병해 업계 순위 구조에 막대한 변화를 주는 「몸집 불리기」가 한창이다.
개별 기업 단위의 경쟁력 제고에 한계를 느낀 다국적기업들이 요즘 수평통합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톰슨 파이낸셜 시큐리티스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벌어진 인수합병(M&A) 규모는 무려 2조5402억달러에 달했다. 이중 미국이 1조6200억달러로 전체의 64%를 차지했으며, 최근에는 유럽쪽 기업들의 합병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올들어서도 9월까지 성사된 M&A 총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 증가한 2조2000억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이 추세로 가면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지난해 수준을 훨씬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역대 합병사례 가운데 금액기준 상위 10건 중 9건이 98년 이후 발생한 것은 M&A 규모가 갈수록 거대화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기업합병 규모는 커 봐야 300억달러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500억달러 이상의 초대형 M&A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기업체들이 합병에 열을 올리는 가장 큰 목적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경쟁력 있는 동종업체를 인수함으로써 창출되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급변하는 시장환경을 타고넘는다는 전략이다.
특히 요즘 세계 통신업계에는 자고 나면 한 두 업체가 없어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그것도 업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굵직한 업체가 갑자기 사라져 잠시라도 한눈을 팔고 있으면 시장의 흐름을 놓치는 일이 다반사다.
통신 분야는 금융 분야 다음으로 합병사례가 많은 것으로 집계돼 세계 M&A 전문가들의 이목이 통신업계에 몰리고 있음을 입증했다.
지난 2월에는 영국 보다폰이 미국의 이동통신업체 에어터치를 인수했고, AT&T는 4월 일본 NTT 및 영국 브리티시텔레컴(BT)과 자본제휴를 맺어 아예 세계 차원의 통합 서비스를 꾀하고 있다.
사실 지난 5월 이탈리아의 올리베티가 텔레콤이탈리아(TI)를 인수(660억달러 규모)한 이후 미국 통신업계의 M&A 바람은 비교적 잠잠했었다.
그러나 이달 초 사상 최대 규모의 M&A 기록을 세운 미국 MCI월드컴의 스프린트 인수(1290억달러 규모)를 전후해 유럽·미국의 통신업계에 또 다시 M&A 바람이 불고 있다.
올들어 미국·유럽 통신시장에서는 모두 230여건의 M&A가 성사됐다. 공휴일을 빼고 매일 한건 정도의 M&A가 이뤄진 셈이다.
MCI월드컴의 스프린트 인수를 전후해서도 미국 AT&T는 도브슨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이동통신업체인 아메리칸셀룰러를 23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한 데 이어 프랑스텔레콤(FT)이 독일 3위의 이동통신업체인 E플러스의 지분 17.2%를 180억달러에 인수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는 등 M&A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DDI·국제전신전화(KDD)·일본이동통신(IDO) 등 통신 3사가 내년 가을을 목표로 합병을 추진, 난공불락의 NTT 아성에 도전장을 낼 것이라는 보도가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이같은 보도 직후 해당업체들은 합병설을 부인했으나, 업계나 현지 언론은 이들 업체가 하나같이 IMT2000과 같은 차세대 이동통신사업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어 합병을 통한 세력확대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올해 초 텔레콤이탈리아를 인수하려 했으나 이탈리아업체인 올리베티의 필사적인 방어에 밀려 실패했던 도이치텔레콤이 현재 합병을 통해 미국 최대 지역전화사로 부상할 SBC커뮤니케이션스·아메리테크 연합과 제휴 회담을 추진하는 등 세계 굴지의 통신업체 사이에는 끝없는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있다.
업계는 이같은 합종연횡으로 인해 통신시장은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형국을 띠게 돼 규모나 기술면에서 뒤지는 소규모 업체들의 입지는 한층 좁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