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학교에서 배운 전공은 어디다 내버려두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대학 졸업 후 철강도매업으로 기반을 다져가고 있던 청년에게 대학 은사의 추상같은 꾸지람이 쏟아졌다. 그 청년은 그후 통신기기 업체를 설립, 전자산업에 뛰어들었고 40여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 20일 한국전자산업 40년 역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최고 유공자로서 금탑산업훈장을 가슴에 안았다.

 대덕전자의 김정식 회장(71). 그는 58년 통신장교 복무시절 군 동료들과 함께 통신기기 제조업체인 대영전자를 세우면서 전자산업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오늘의 대덕전자, 그리고 김정식 회장을 말할 때 누구나 연상하게 되는 것은 인쇄회로기판(PCB)이다. 전자제품이면 어디에나 들어가는 핵심 기반부품인 PCB. 그러나 당시 쓸 만한 제품은 모두 외국산이었다.

 『국산 PCB가 있다 해서 한번 구입해 썼는데 사고가 나는 바람에 큰 낭패를 겪었습니다. 누군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5년 무역업체인 대덕산업을 인수한 김 회장은 공장 안에 울타리를 쳐놓고 PCB 개발에 나섰다. 이때부터 조금씩 쌓아온 기술은 69년 빛을 발휘할 기회를 맞는다. 그해 정부가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하고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72년 김 회장은 일본 우라하마전자와 합작으로 한국우라하마전자(대덕전자 전신)를 설립, 양면 PCB 생산에 본격 돌입했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국내에는 시장이 없어 전량 수출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터졌고 일본 파트너가 도산하고 말았지요. 이후 정부에서 추진한 M10CN 자동교환기 개발업체로 선정될 때까지 6∼7 년 동안은 샘플만 만드는 공장에 불과했습니다.』

 김 회장은 당시를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수출 2억달러, 매출 3000억원의 세계적인 PCB업체 대덕전자를 일궈낸 백전노장이 당시를 회고하는 순간에서는 아찔함이 엿보였다.

 김 회장은 고집스럽게 PCB 한 분야만을 파왔다. 『대덕쯤 되면 뭔가 새로운 사업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너무 고지식하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지만 김 회장은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전자산업의 빠른 변화를 따라가기도 힘든데 조금 벌었다고 해서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것은 겨우 얻어낸 힘을 분산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 회장의 이러한 고집은 지난 IMF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IMF 상황에서도 20%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지속한 것이다. 김 회장은 『IMF를 겪고나서는 「역시 대덕의 길이 옳았다」는 목소리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PCB는 장치산업이자 기술집약 사업이면서 공해산업입니다. 악조건을 모두 다 갖춘 셈이지요. 반도체기술의 변화에 따라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도 있습니다.』 항상 시장과 기술흐름에 따라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PCB분야라는 것이다. 이 일만으로도 그는 『가슴이 벅차서 다른 곳으로 눈 돌릴 틈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인가 김 회장은 항상 공부할 것을 강조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틈만 나면 하는 소리가 공부하라는 것. 『오늘 우승을 했다고 해서 내일도 우승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

 김 회장의 공부론은 집요하다. 틈만 나면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제 장기근속만으로는 대접받을 수 없으며 기술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회장이 물론 「공부 잔소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이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마련에도 남달리 애쓰고 있다. 대덕전자의 직원들은 5년만 근무하면 집을 마련한다. 10년 동안 모은 100억원의 근로복지기금이 직원의 주택마련·장학금 등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직원이 주주다. 올 6월 유무상증자 때도 가장 적게 배당받은 여직원이 3000주를 부여받았을 정도.

 『장치산업은 어느 한사람만 게을리해도 불량이 나옵니다. 팀워크가 중요하지요.』 직원들이 회사생활에서만큼은 걱정하는 일이 없어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복지후생에 신경쓰는 이유다.

 40년을 전자산업과 함께 해온 노 기업인이 꿈꾸는 대덕전자의 21세기는 어떨까. 『기술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공부만으로는 안되며 창의가 따라야 합니다. 조금만 게을리하면 바로 뒤처지고 맙니다.』

 그러면서 노 기업가는 여전히 공부하는 기업을 강조하고 있다.

김상범기자 sb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