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 송어

 「송어」는 여러가지 면에서 그동안 박종원 감독이 보여주었던 영화적인 궤적에서 이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선 외적으로는 그의 화제작들이 대부분 소설로도 유명세를 치른 원작을 바탕으로 했던 것과 달리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영화화했다는 점과, 연출가의 입장에서 벗어나 제작자의 입장까지 겸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업적인 논리를 떠나 영화 자체에도 미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감독의 전작에서 보여지던 카리스마는 훨씬 분산되고 약화되었지만 인간과 관계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의 노력이 보인다.

 영화 내적으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영원한 제국」과 달리 현재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도 얘기될 수 있으나, 그보다 그가 영화에서 일관되게 추구해온 권력과 갈등이라는 구조를 떠나 처음으로 인간의 원초적 본성과 관계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 새롭다. 그의 관심사가 사회와 인간의 관계에서 최초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옮아간 것이다. 또한 굳이 장르의 분류를 한다면 드라마와 스릴러, 코미디의 요소가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송어」는 휴가차 시골로 향한 도시인들이 겪는 2박3일간의 짧은 여정을 그린 영화다. 그들이 겪는 일상사는 보통의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발적인 사고가 벌어지면서 평화롭고 나른하게 여겨지던 그들의 휴가는 총성과 치사한 욕망의 아수라장이 된다.

 「송어」의 등장인물들은 대립과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크게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문명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산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구분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무의미해진다. 사건이 터지면서 관객들은 그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만큼 쓸쓸한 인간의 모습과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결말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요소다.

 영화에서 자연의 풍광이나 송어 양식장은 감독의 연출의도를 읽게 하는 중요한 메타포다. 감독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살해버린다」는 송어의 특징에 착안, 환경의 변화에 의해 드러나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속내를 낱낱이 헤집고 들어간다. 영화에서 이것은 아주 일상적인 모습들을 통해 표출되는데, 그것이 오히려 등장인물에 대한 불쾌한 동질감과 영화적인 긴장감을 상승시켜간다.

 친구를 찾아 양어장에 놀러온 도시인들은 거칠고 무식한 엽사들에게 받은 모욕과 불쾌함을 힘없는 산골 소년에게 퍼붓고, 엉뚱한 이 화풀이는 소년을 죽음으로 몰고간다. 이제 이들에게 우정이나 사랑으로 포장되었던 감정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들은 서로를 헐뜯으며 감정의 찌꺼기들을 토해낸다. 「송어」는 가장 일상적인 모습으로 가장 잔인하게 인간의 모습을 공격해오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