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터넷 탄생 30년> 인터넷을 만든 사람들

 모든 르네상스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들이 마련이다. 인터넷의 혁명도 마찬가지다. 월드와이드웹(WWW)을 디자인한 팀 버너스 리, TCP/IP를 개발해낸 빈트 서프,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을 처음 생각했던 더그 엥겔버트, 그리고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슨. 이들은 모두 새 밀레니엄의 밑그림을 그린 천재 엔지니어들이다. 만일 인터넷 르네상스에 기여한 수 백명의 개성있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헌정해야 한다면 수상자는 빈트 서프(Vint Cerf)다. 그는 인터넷의 삼촌, 이모로 불릴 만한 수많은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디지털시대를 열었다.

 사실 인터넷 원년인 69년부터 70년대 말까지는 인터넷의 혼돈기였다. 갖가지 아이디어와 가설, 실험이 마구 뒤섞여 인터넷이라는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카오스의 시기였다.

 그리고 거기엔 알파넷(ARPAnet)이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알파넷이라는 불빛에 의존해 제각기 혼돈 속을 뚫고 나갈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초 빈트 서프는 동료 밥 칸과 함께 인터넷 프로토콜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를 발표했다. TCP/IP란 컴퓨터가 통신망을 타고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한 규약이다. 결국 그는 네트워크 세계의 언어와 문법을 만들어낸 셈이다.

 빈트 서프는 현재 MCI사의 인터넷 아키텍처&테크놀로지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흰 수염을 기른 세련된 스타일의 그는 스타트렉에 나오는 우주전함 엔터프라이즈호의 선장처럼 보인다. 엔지니어답지 않게 셰익스피어의 시구를 외우는 그는 미국 언론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소유자. 요즘도 티셔츠와 빛바랜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강의를 한다.

 인터넷의 대중화에 가장 공로가 큰 사람은 월드와이드웹의 디자이너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44)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영국의 명문 퀸스 칼리지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제네바로 갔다. 거기에서 유럽미립자물리학연구소(CERN)의 컨설턴트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버너스 리는 「글로벌 하이퍼텍스트(global hypertext)」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그리고 91년 여름, 하이퍼텍스트를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공개하게 된다.

 많은 벤처기업가들이 인터넷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있지만 정작 버너스 리는 웹을 상업화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W3 컨소시엄의 이사인 그에게 『왜 웹을 팔아 백만장자가 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버너스 리는 『웹은 원래부터 「정보가 떠돌아다니는 URL의 우주」였고 단지 나는 그 우주에 하이퍼텍스트 링크라는 교통수단을 제공한 것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는 지금도 묵묵히 HTTP와 HTML을 진화시키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인터넷의 탄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면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있다면 더그 엥겔버트(Douglas Engelbart·74)다. 그는 하이퍼텍스트라는 개념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이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엥겔버트는 레이더 기술자로 필리핀 제도에 나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작은 도서관에 앉아 베너바 부시(Vannevar Bush 1890∼1974)가 쓴 한 편의 논문(「As We May Think」)을 읽고 있었다. 그 논문에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결국 기계가 인간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라고 써 있었고 엥겔버트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전선에서 돌아온 후 그는 스탠퍼드연구소로 가서 부시의 말대로 인간의 지성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연구했다. 그 결과 세계 최초의 하이퍼텍스트를 개발해 낸 것이 오늘날 온라인 멀티미디어 시스템의 원형이 된 NLS(oN Line System)다.

 엥겔버트는 NLS와 함께 나무로 만든 귀여운 설치동물인 마우스를 개발했다. 마우스는 GUI와 전자우편, 영상회의시스템, 그리고 워드프로세싱을 가능하게 한 도구였다.

 68년 열렸던 마우스 발표회장에서 엥겔버트는 SF소설 속의 사이보그 같은 차림으로 머리에 마이크로폰을 쓰고 한 손에는 마우스, 다른 한손에는 키보드를 들고 이 새로운 도구의 성능을 시연해 보였다.

 이제 회색머리의 노신사가 되어 실리콘밸리에서 부트트랩(Bootstrap)연구소를 이끄는 그를 알아보는 젊은 벤처기업가는 거의 없다. 서부개척기에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건너온 카우보이의 손자로 태어나 40년을 컴퓨터산업과 함께 해 왔던 그에겐 불공평한 대접이다.

 하지만 엥겔버트가 연구에 몰두하던 시절엔 돈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엔지니어들의 관심사였다. 야후의 제리 양처럼 이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적인 아이콘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는 엔지니어로서 후회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인터넷의 초기 비전을 제시한 사람 중에 IPTO의 초대 책임자 릭라이더(J Licklider)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하버드대학과 MIT 링컨연구소를 거쳐 BBN(Bolt Beranet and Newman)이라는 회사에서 정보시스템담당 부사장으로 일했다.

 ARPA가 62년 정보분야를 지원하기 위한 부서로 정보처리기술실(IPTO:Information Processing Techniques Office)을 설립하자 릭라이더는 초대 책임자로 와서 컴퓨터그래픽, 인공지능, 컴퓨터 네트워크 등 최첨단 연구를 지휘했다.

 그는 이미 1960년 「인간­컴퓨터 공생(Man­Computer Symbiosis)」에 관한 논문을 집필했을 만큼 사람과 기계의 인터페이스에 대해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데이터와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엔 몽상가로 취급받을 만한 얘기였지만 지금 바로 그런 세계가 실현되고 있다.

 사이버세계에 1등 항해사가 있다면 두말 할 필요 없이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다. 그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라는 웹브라우저 하나로 불멸의 이름을 남기게 됐다. MS와의 브라우저 싸움에 패한 후 AOL의 CTO(Chip Technology Officer)를 거쳐 다시 벤처사업가로 돌아간 앤드리슨에겐 인터넷처럼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앤드리슨은 주민이 1500명밖에 안되는 시골도시 출신. 유복한 가정환경 덕택에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빌 게이츠와는 달리 그는 씨앗판매상인 아버지와 공장 근로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보통의 시골청년으로 자랐다. 일리노이주립대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던 앤드리슨은 92년 국립슈퍼컴퓨팅응용센터(NCSA)에서 시간당 6.85달러를 받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평소 지구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인터넷에 대단한 매력을 느끼고 있던 그는 개발 착수 6주만에 웹브라우저의 원조격이었던 「NCSA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앤드리슨의 신화창조는 미국 최고의 천사자본가 짐 클라크 넷스케이프사 회장(전 실리콘그래픽스 회장)과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비롯된다.

 당시 자신이 창업한 실리콘그래픽스사를 떠나기로 결정한 클라크 회장은 유명한 벤처캐피털리스트 존 도어의 권유로 다음 행보를 앤드리슨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 전자우편을 통해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드디어 94년 4월 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서 자본금 400만달러로 벤처기업 넷스케이프를 창업한다. 그해 10월 웹 접속프로그램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1.0 시험판은 네티즌들을 열광시켰고 앤드리슨은 나스닥 상장으로 부자가 됐다.

 193㎝의 거구로 유난히 흰 살결에 금발머리를 한 앤드리슨은 워싱턴 저택에서 세 마리 불독과 함께 살면서 성룡이 출연하는 B급 액션 영화를 즐겨 보고 매일 새벽까지 E메일을 주고받는 전형적인 미국 젊은이다.

 그밖에도 알파넷 탄생의 1등공신인 래리 로버츠, 전자우편 프로그램을 개발한 레이 톰린슨(Ray Tomlinson), 라우터의 원형인 IMPs(Interface Message Processors)를 제안한 웨슬리 클라크(Wesley Clark) 등도 인터넷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만한 엔지니어들이다.

 요즘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 사이에선 「테크니컬 위저드(Technical Wizard)」라는 말이 유행이다. 위저드란 네티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천재적인 기술신(技術神). 이들은 모두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테크니컬 위저드들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