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를 잃어버렸어요. 제발 찾아주세요.』
『잘 키운 캐릭터와 아이템을 15만원에 팝니다.』
이상의 문구들은 지하철 분실물 센터나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적힌 글들이 아니다. 「리니지」나 「바람의 나라」와 같은 온라인게임의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들이다.
온라인게임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창이나 방패와 같은 게임상에서만 존재하는 사이버재산이 교환가치를 인정받자 이를 현금으로 사고 팔거나 훔치는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행 법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여러가지 문제점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22일 강남경찰서는 압구정동의 한 PC방에서 안모씨에게서 「대신 점수를 따 달라」는 부탁을 받고 게임을 하다 안씨의 ID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방패와 투구 등 안씨의 게임 아이템을 훔친 혐의로 송모군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안씨의 신고로 송모군을 입건했으나 적용 죄목이 없어 한동안 애를 먹었다.
만약 송모군이 훔친 물건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유체물이었다면 당연히 절도죄를 적용했겠지만 사이버재산이었기 때문에 죄목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경찰은 결국 고심끝에 정보통신망 보급확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송모군을 입건했다. 이처럼 사이버공간상의 재산은 형법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 재산권의 한 분야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최근 사이버세계에서 재산상 손실을 입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경찰은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오프라인게임과 달리 온라인게임은 가상공간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빨리 재산을 모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현실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속에서 게이머들은 하루 빨리 고수가 되고 싶어 안달을 하고 있다.
일부 사용자들은 현금을 지불하고서라도 레벨이 높은 사용자들로부터 아이템을 사기 위해 이곳 저곳 수소문을 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템은 10만원 이상을 호가할 정도로 환금성을 가지다 보니 다른 이용자의 ID와 비밀번호를 부정하게 알아내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훔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게임 제공사에는 하루에도 20여건씩 아이템을 도난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된다.
이같은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대부분 온라인게임사들은 캐릭터와 아이템 매매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아이템 매매행위에 대해서는 ID 삭제 등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게임 이용자들은 이같은 게임 제공사들의 입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공연하게 캐릭터와 아이템을 현금과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이용자들은 한달 평균 2만원 이상을 투자해 게임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정성을 들여 키운 아이템을 현실세계에서도 인정해 사고 팔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이용자들이 현금을 주고 아이템을 사고 싶어하는데 매매행위를 못하도록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게임사가 임의대로 사용자의 ID를 삭제할 권리가 없다며 자신의 캐릭터와 아이템에 대해 강한 소유욕을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온라인게이머들은 사이버재산도 현실세계의 재산처럼 매매할 수 있도록 재산권으로 인정해달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법조계 일부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온라인게임상의 사이버재산이 「사용가치」를 넘어 「교환가치」를 인정받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