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iBiz 24> 美 IT업계는 "ASP와 열애중"

 「돈을 주고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것인가 아니면 월 사용료만 내고 프로그램을 빌려 쓸 것인가.」

 앞으로 기업체의 전산담당자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인터넷이 소프트웨어 유통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 정보통신(IT)업계에는 그야말로 ASP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ASP(Application Service Provider)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네트워크로 제공하는 신사업. 소프트웨어는 사서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인터넷으로 프로그램을 공급, 월 사용료를 받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ASP는 ERP, CRM, EC솔루션, 휴먼리소스(HR),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등 고객사가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보내준다. 그밖에 온라인 제품 카탈로그라든가 회계 거래 데이터를 데이터센터 서버에 보관해 주고, 온라인 영상회의 환경도 제공한다. MS워드, 파워포인트, 스타오피스 등 사무용 프로그램은 기본이다. 결국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인터넷 접속환경과 웹브라우저뿐이다. 그래서 「버스를 통째로 사지 말고 버스티켓만 끊고 승차하라」가 ASP 관련업체들의 슬로건이다.

 이처럼 ASP가 떠오르는 이유는 영세업체나 중소업체들의 경우 인터넷시대에 어울리는 인프라를 구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이 취약하고 IT전문가들이 부족하다 보니 ERP를 비롯, 고가의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을 구매하기 어려운 것. 이들 업체는 유비쿼터스(Ubiquitous:어디서나 존재하는) 네트워크 환경을 만들지 않는다면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으로 ASP라는 대안을 선택한다. 매달 사용료만 내고 필요한 모든 프로그램과 전문인력을 아웃소싱하면 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 IDC는 올해 ASP 시장규모를 약 1억5400만 달러, 2002년에는 400억 달러로 추산한다. 이같은 황금시장에 먼저 진출한 IT업계 대기업은 IBM, 오라클, SAP, EDC(Electronic Data Systems), US웹/CKS 등.

 특히 래리 엘리슨 회장이 이끄는 오라클은 「오라클 비즈니스 온라인(BOL)」이라는 이름으로 ASP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20개사 정도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데, 향후 5년 이내에 BOL로 인한 매출이 전체 애플리케이션 판매의 5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오라클의 존 렙코 BOL담당 부사장은 『기존의 소프트웨어업계 거인들이 ASP기반의 서비스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설 땅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면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ASP에 한발 늦게 대응한 데 비해 IBM이나 오라클은 우선권을 쥐게 됐다』고 말한다.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US웹/CKS도 성공적으로 ASP시장에 진입한 업체. 이 회사는 IT업계의 컨설팅 서비스업체와 ISP, 소프트웨어 공급업체, 인터넷 벤처 등 30여개사의 연합체다. US웹/CKS의 CEO 로버트 쇼씨(52)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거대기업들이 Y2K문제로 숙취한 상태다. 만일 술에서 깨어난다면 이미 소프트웨어 프로덕트 시장은 사라지고 ASP가 남게 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ASP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 벤처업체들도 앞다퉈 ASP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ASP라는 새로운 영토에는 아직 경매의 e베이나 온라인 서점 아마존처럼 절대강자가 없기 때문에 벤처업체라 해도 먼저 성공모델을 만들 경우 얼마든지 리딩에지 기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USi, 코리오, 서비스넷, 퓨처링크, 월드 테크놀로지 서비스, 비드컴 등의 벤처업체들이 ASP사업을 선언했다.

 이 가운데 USi사는 이미 IPO에 성공해 월스트리트 투자분석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USi는 북미와 유럽, 아시아의 인터넷 백본을 연결하고 피플소프트, 브로드비전, 마이크로소프트, AOL, 시벨 시스템스 등과 계약을 체결, 다양한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고급 브랜드의 애플리케이션을 구비한 아웃소싱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

 IDC의 분석가 메레디스 매카티씨는 『전자상거래 붐이 ASP의 지속적 성장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AMR 리서치의 투자분석가 짐 셰퍼씨는 『집안의 가보를 남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중요한 사업정보를 다른 업체의 데이터센터에 맡기고 원격접속을 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것. 메타그룹의 스탠 리픽씨도 『만일 계약이 만료된다면 그때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계약업체의 시스템이 파괴되거나 문을 닫게 된다면 해당업체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패러다임 시프트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많은 기업체들이 마이크로소프트나 피플소프트의 제품을 구입하는 대신 ASP들에 월 사용료를 내고 빌려 쓰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제 소프트웨어는 프로덕트가 아니라 서비스로 이해해야 한다. 만일 그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생존이란 불가능하다.

샌프란시스코=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