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셈블리에서 C++까지, 도스에서 유닉스까지 섭렵한 사람이라면 전문 프로그래머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가끔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컴퓨터 전문가를 만나게 된다.
최영호 변호사(48)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사시 23회로 법조계에 입문해 부산지검 공판부장을 끝으로 지난 6월 변호사로 새출발한 그는 최근 사무실 간판옆에 한국정보범죄연구소란 간판을 하나 더 내걸었다.
정보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사회생활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법적 뒷받침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전문법조인이 크게 부족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정보범죄에 대한 법률전문가를 양성하고 정보범죄가 일반화되기 전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할 계획이다.
자신이 소장을 맡고 지적재산권 분야 전문연구원 2명이 상주하고 있는, 아직은 미약한 조직이지만 현직 검사와 판사, 교수 등이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되고 또 전문인력도 계속 충원할 방침이다. 그렇게 되면 세미나 개최, 연구서 발간 등 새로운 정보범죄 현상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 방안을 꾸준히 마련할 생각이다.
최 변호사가 컴퓨터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지방검사 시절인 85년. 당시 처음 등장한 16비트 컴퓨터를 검찰업무 전산화를 위해 도입하면서 컴퓨터를 알게 됐다. 『통신에서 유능한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어셈블리, C++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고 인터넷도 알게 됐지요. 당시 통신비만 수십만원씩 나오곤 했습니다.』 컴퓨터 통신에 빠지게 되면서 본격적인 주경야독이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틈틈이 쌓아온 컴퓨터와 통신 실력은 「컴퓨터와 범죄현상」 「정보범죄론」 등 전문서적을 출간할 수 있는 정도가 됐고 유흥업소나 우범자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일괄검색에 의한 음란물 단속 등 실제 업무에도 활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해킹이나 암호 해독, 도청, 컴퓨터 바이러스 등 두뇌싸움을 할 수 있는 범죄에 개인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최 변호사는 전자거래·인증 등으로 관심 영역의 폭을 넓혀갈 생각이다.
법이 기술이나 현실을 과도하게 제어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유방임에 맡기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하는 최 변호사는 정보사회의 사회 방위에 공헌하는 것이 개인적인 포부라고 밝혔다.
김상범기자 sb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