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와 삼성전자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은 지금과 같은 메모리 편중구조로는 장기적인 안정을 기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호황과 불황이 극명하게 교차하면서 가격의 급등락이 심한 D램 등 메모리반도체사업을 고집할 경우, 경영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감한 국내 반도체업체들로서는 위험이 적으면서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할 수 있는 사업으로 파운드리 분야가 최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반도체 파운드리사업은 설계공정이 끝난 상태의 반도체 생산을 다른 업체들로부터 위탁받아 대행하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사업 형태는 대만 반도체업체들이 자체적인 지적재산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반도체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택하기 시작한 전략으로 일종의 하청사업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단순한 하청업체로 생각했던 대만 반도체업체들이 파운드리사업 형태를 배경으로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선진 반도체업체들조차 파운드리사업을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의 연간 수익률은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보다도 높은 46%를 기록하고 있다.
파운드리사업이 이처럼 높은 수익을 올리는 원인은 기본적으로 미국업계를 중심으로 반도체 설계만을 담당하고 제조는 타사에 위탁하는 패블리스(Fabless)업체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파운드리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와 함께 반도체를 개발에서 제조까지 일괄 담당하는 반도체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업의 유연성이 많아 반도체 시황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것도 파운드리사업이 가진 장점이다.
메모리반도체사업이 최고의 호황을 보였던 지난 95년 이후 거의 3년동안 메모리 중심의 국내 반도체업체가 엄청난 고통을 겪은 반면 대만의 파운드리업체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면서 승승장구한 것이 파운드리로 관심을 갖게 된 기본 배경으로 보인다.
국내 업체들이 파운드리산업 진출을 결정한 또 하나의 이유는 D램 제품의 고집적화가 급진전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노후 생산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감가상각이 끝난 0.45㎛ 이상의 공정률을 사용하는 6인치 이하 웨이퍼 처리시설을 파운드리 분야에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영원한 숙제」인 비메모리(시스템 IC)사업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 파운드리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최근 파운드리산업이 이미 설계가 끝난 반도체를 단순 수탁생산해주는 수준을 벗어나 설계단계부터 최종생산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완전히 대행하는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험성이 강한 비메모리사업에 대한 기반기술을 확보하는 전 단계로 파운드리 분야를 적극 육성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