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인터넷 업계는 물론 음식료·숙박업계까지 각종 이벤트를 마련해 Y2K·밀레니엄을 최고의 마케팅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흥행에 가장 민감한 미국 할리우드와 방송가가 밀레니엄 이슈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세기말을 맞아 밀레니엄 현상을 소재로 해서 나오는 영화와 TV프로그램은 캐나다의 한 독립영화제작사에서 만든 「라스트 나이트(Last Night)」, NBC의 「Y2K」 특집 프로그램, 종교방송인 트리니티 브로드캐스팅 네트워크의 「오메가 코드」 등 그야말로 몇 개 되지 않는다.
유명 스타가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는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으로 나오는 신부를 구하기 위해 뉴욕을 찾은 사탄의 얘기인 「엔드 오브 데이스(End of Days)」 정도로, 할리우드는 밀레니엄 이슈에 그야말로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세계가 밀레니엄 이슈에 열광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최고의 상상력과 흥행 능력을 갖고 있는 할리우드와 미국의 방송가가 이처럼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과연 뭘까.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의 영화전문 평론가인 리처드 시켈씨는 할리우드가 밀레니엄 현상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은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수명이 길어야 한다. 최근 나오는 영화는 극장 상영이후에도 6개월 정도 계속되는 비디오 판매에 수입의 절반 정도를 의지하고 있는데, 2000년을 별다른 사건없이 지낸 사람들이 흥미가 사라진 밀레니엄 프로그램을 보겠느냐』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반해 Y2K 영화는 워싱턴의 압력 때문에 Y2K 영화가 나오지 못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조금 냉소적이다.
컴퓨터와 각종 하이테크 기기들이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상황을 빈틈없이 인식하지 못할 때는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Y2K 문제가 별탈없이 해결될 것으로 믿기를 바라는 워싱턴의 압력에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사들이 Y2K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2000년 숫자표기로 인해 야기되는 컴퓨터 문제를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Y2K 영화장르를 할리우드가 스스로 포기했다』고 조너선 시브로씨는 지적하고 있다.
할리우드가 이처럼 밀레니엄과 Y2K 이슈에 초연한 자세를 보이는 상황을 독립영화제작사들은 오히려 큰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프랑스의 독립영화제작사인 오트에쿠르(Haut et Court)는 99년 12월31일 대만·브라질·캐나다·헝가리·미국 등 10개국의 독립영화제작사에서 만든 영화 10편을 일제히 개봉할 계획이다.
「라스트 나이트」 역시 오트에쿠르가 개봉할 10편의 영화 가운데 하나인데,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세기말적인 재앙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몇명의 사람들이 지구의 마지막 6시간을 보내는 서로 다른 방법을 명상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이 영화 감독인 매켈러씨는 『라스트 나이트는 재앙을 가장 긍정적인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궁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종렬기자 jyha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