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사이버공간의 사법권

김형진 영화진흥위원회 고문변호사

 90년대 초 미국 시카고에서 로스쿨을 다닐 때의 일이다. 어느날 일본서적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던 한 서점의 주인이 갑자기 경찰에 체포되면서 일본 교민사회가 들썩거리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서점주인의 체포이유를 일본에서 수입한 미성년자의 누드사진집을 판매했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미국에서 이러한 행위는 최고 10년의 실형이 선고될 수 있는 중범죄로 그 처벌은 매우 엄했다. 그러나 이 누드집을 구입한 대다수의 일본 유학생들은 여고생의 누드사진을 판매 또는 구입하거나 소지만 해도 엄하게 처벌되는 미국의 법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크게 반발했지만 이런 인식차이가 현행법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다.

 최근 미국은 아동 포르노금지법을 새롭게 제정하는 등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을 배포하거나 거래하는 행위에 대해 법적 규제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미국정부의 이러한 엄격한 입장은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통해 이뤄지는 정보나 물품의 교환행위 자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바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국제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과거에는 외국법이 국내에서의 거래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이처럼 국경이 없는 가상공간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법권의 적용을 주장하는 나라들이 차츰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의 예를 보면 외국에서 개설된 인터넷 홈페이지라도 미국에서 접속할 수 있거나 미국내의 상거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그 홈페이지들이 미국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판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내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외국기업의 홈페이지를 통해 불법을 행한다면 미국정부가 외국에 소재한 외국기업에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판례는 국가 사법권의 역외적용에 대한 종래의 개념을 상당히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는 미국은 영상물의 음란성 여부를 결정할 때 해당 지역의 정서에 따라 기준을 정한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문화적 배경이나 가치가 다르므로 동일한 영상물에 대해서도 음란성 여부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를 수 있다고 판단하는데, 뉴욕과 같은 대도시와 몬태나주의 시골마을은 음란성 문제나 표현의 자유문제에 대해 매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이는 우리 기업이 제작하여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 영상물의 경우, 어느 지역에서 소송이 제기되는가에 따라 최종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이처럼 외국정부가 자국의 사법권을 확대 적용하는 추세는 자국의 국익보호라는 측면에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문화와 법규범이 다른 외국인에게는 매우 곤란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영화사가 자체 제작한 영화의 한 장면을 홍보용으로 인터넷에 올렸는데, 어느날 미국 네브래스카주 검찰청으로부터 음란성 여부로 조사할테니 언제까지 출두해달라는 통고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기업의 대표가 미국 중서부의 조그만 도시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되면서 재판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이나 수고는 둘째 치고라도 재판의 공정성 여부가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법권의 확대적용 추세는 우리 기업들에 매우 중요한 문제로 곧 대두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우리 기업도 홈페이지의 작성이나 유지, 그리고 홈페이지를 통한 영상물 등의 홍보 및 판매방식 등에 보다 치밀한 사전점검이 필요하게 됐다. 외국의 관계법을 살펴보아 불필요하게 외국의 사법관할을 받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정부가 향후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전자상거래에 대한 사법권 역외적용 문제에 있어 나름대로의 입장을 정리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해두는 것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