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전자통신기술의 발달과 세계 증권시장의 변화

이정범

◇아이오아주립대 재무관리 박사

◇통신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현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

 전자통신기술의 발달은 증권산업의 모든 기능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변혁은 증권산업 참가자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과 동시에 기존의 종사자들에게는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일고 있는 증권시장의 변화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럽 및 미국의 증권거래소들은 통합열기에 휩싸여 있다. 기술향상을 통한 시너지효과 극대화 및 운영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둘째, 컴퓨터를 이용한 네트워크형 거래시스템들의 성장은 거래소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셋째, 다양한 투자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하고 직접 주문을 입력할 수 있는 온라인 거래서비스의 성장이다.

 온라인 거래서비스는 증권중개업자의 도움 없이도 투자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변화의 동인은 한가지다.

 바로 전자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정보분배의 신속화, 정보처리의 저렴화 그리고 정보의 국제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증권거래소들간 통합 움직임은 이미 가시화됐다.

 유럽의 경우 런던증권거래소와 독일증권거래소를 주축으로 8개의 증권거래소가 참여하는 범유럽 단일시장 설립을 1년여전부터 추진해 왔다.

 비록 단일 시장은 아니지만 유럽 각국 거래소들을 하나로 연계한다는 점에서 일대 변혁이라 할 수 있다.

 거래소간 통합 논의는 유러화의 탄생과 지역 거래시스템들간 경쟁심화에서 비롯됐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증권거래에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미국에서 급성장중인 새로운 거래시스템인 전자통신네트워크(ECN)도 유럽 각국의 증권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이와 함께 19개의 대형 펀드매니저들이 자신들만의 거래환경에 적합한 「E크로스넷」 거래시스템 설립을 추진중이어서 지역·국가라는 장벽에 의존한 기득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이미 나스닥과 아메리카증권거래소의 통합이 이뤄져 시가총액 2조달러 규모에 달하는 증권시장이 탄생했으며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보다 다양한 선택권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통합화 추세는 여러 요인들 중에서도 특히 운용비용·투자기회 등의 측면에서 유리한 「규모의 중요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거래소들은 통합을 통해 개별적인 거래환경을 연계하고 또한 다양한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더욱 많은 투자자들을 자신의 거래소로 유인하려는 것이다. 이는 증권시장의 정설로 알려진 「유동성이 새로운 유동성을 창출한다」는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

 ECN이란 새로운 거래시스템의 탄생, 지역거래소들간의 경쟁심화는 거래소 지배구조의 변혁을 유도하고 있다. 그동안 회원제로 운영돼 오던 거래소들의 「탈상호소유화」 움직임이 그것이다. 지난 93년 민영화를 통해 설립된 「도이치보제AG(DB)」 운영하의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스톡홀름 증권거래소, 호주 증권거래소 등은 각각 영리법인화를 단행하면서 자사 주식을 자신의 거래소에 상장시키는 탈상호소유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 미국의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 등도 당면한 경쟁상대인 ECN에 맞서기 위해 현재 회원제 조직구조의 영리법인화를 추진중이다.

 이같은 거래소의 영리화는 새로운 거래시스템과 경쟁을 위한 체질개선방안으로 진행중이다. 저렴한 비용에 투자자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자거래시스템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존 회원인 중간 중개업자들의 간섭으로부터 탈피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향성 설정과 의사결정의 신속화, 그리고 기술개발 등을 위한 원활한 자금조달구조 실현을 추진중이다.

 이처럼 기존 거래소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ECN 거래시스템에 전 세계 증권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CN이란 이른바 대체거래시스템(ATS)의 일부분으로, 기존 ATS가 가입자들만의 증권거래를 위한 폐쇄형 사설네트워크였다면 ECN은 시장참가자 모두에게 접근을 허용하는 개방형 네트워크다.

 ECN은 거래소나 나스닥의 시장참여자들이 자신의 호가나 고객의 주문을 해당 거래소 외의 타 거래시스템으로 연결시켜줄 뿐더러 가입자 외에 일반투자자들까지 접근가능한 장점이 있다. 현재 ECN은 뉴욕증권거래소 주식거래량의 5%, 나스닥의 28%를 각각 소화하고 있다. 짧은 시간내에 이처럼 ECN이 급성장한 배경은 네트워크의 개방성을 내세워 거래소의 매매체결기능을 동일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5월 현재 9개의 ECN이 가동중이며 전부가 나스닥에 연계돼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시스템은 로이터사가 운영중인 「인스티넷」으로 전체 ECN시장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온라인 증권사인 「데이텍」의 「아일랜드」가 20%이상의 점유율로 추격중이다.

 아일랜드 ECN은 중개업자나 딜러들이 나스닥의 지정가주문을 직접 게시·매매할 수 있는 전자거래시스템으로 현재 200개 이상의 중개업자·딜러가 가입중이다. 또 미국증권관리위원회(SEC)의 규정에 따라 등록된 ECN으로 증권업협회(NASD)의 회원이기도 하다. 아일랜드는 이트레이드사 및 골드만삭스사가 각각 25%의 지분 참여하기로 한 「아키펠라고」와 함께 증권거래소 허가를 얻기 위해 대기중이다.

 ECN의 장점을 크게 보면 다음 네가지 정도이다. 첫째, 신속한 거래집행이다. 주문입력부터 주문전달·거래체결·보고 등 일련의 과정이 중개업자의 개입 없이 온라인으로 가능해 처리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둘째, 저렴한 거래비용이다. 중개업자를 제외하고 투자자들의 상호의사교환에 의한 주문체결이 가능하므로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셋째, 유리한 매매가격의 발견이다. ECN을 통해 거래할 경우 나스닥의 시장참여자나 뉴욕증권거래소 전문가들이 매도·매입호가의 차이로 누리는 스프레드에 의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익명성의 보장이다. ECN을 통해 입력한 주문은 체결전은 물론 체결후에도 거래주체가 누구인지 공개되지 않는다. 거래체결후 공개되는 주문주체가 ECN이기 때문이다.

 전자통신기술의 발달은 ECN외에도 기존 증권시장 매매시스템의 혁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 예가 바로 「옵티마크」라는 새로운 매매시스템이다. 옵티마크는 퍼시픽증권거래소에서 뉴욕거래소 주식을 매매하기 위한 매매체결시스템으로 나스닥도 도입을 추진중이다. 특히 옵티마크는 익명의 투자자들에게 가격·주문량의 다양한 옵션을 제공, 잠재적인 유동성을 끌어옴으로써 특정 주문에 대한 체결 가능성을 극대화했다. 높은 투자만족도가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일년동안 전자통신기술의 발달이 초래한 증권시장의 변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며 혁신적이다. 비록 미래는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불투명하고 글로벌 증권거래에 대한 감독 또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지만 21세기 증권시장의 윤곽은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기존 거래소들의 객장은 과거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거래소들은 더 이상 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전자체결시스템의 등장으로 거래소의 매매시스템도 다양한 선택의 폭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거래소들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초고속 데이터통신망과 위성을 통한 연계로 글로벌 네트워크로 묶이는 추세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자사 주식을 국제시장에 상장시키고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시장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얘기다.

 유통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발행시장에서도 변혁은 시작됐다. 인터넷이 공모주 분배를 용이하게 해주고 더욱 많은 투자자들을 공모시장에 끌어 옴으로써 기업의 자금조달비용도 크게 감소될 전망이다.

 이상과 같이 세계 주요시장들은 거래소간 통합,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 및 도입, 거래소의 영리화, 거래시간의 연장 등을 통해 증권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증권시장 환경의 변화에 대해 지난 6월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전미증권업협회 이사장인 프랭크 씨는 『이처럼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 변화를 거부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라는 한마디로 압축해 강조한 바 있다. 증권거래의 사이버화가 기존 시장참가자들에게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

 사이버시장의 발달에 따라 증권거래소뿐만 아니라 여타 증권 관련기관들도 도도한 변혁의 물결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직업들이 소멸되고 또한 새로운 직업들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대형증권사들은 수입의 원천을 거래수수료에서 투자자문 및 정보서비스로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중개업자들은 거래수수료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투자자문 등 가치창조적인 업무를 확대하는 등 새로운 업무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이같은 변화의 방향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회사는 필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새천년을 향한 증권시장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변화라기보다는 「자연적인 진화」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새로운 증권거래 환경의 선두주자는 투자자 및 발행회사의 요구를 가장 앞서 충족시켜 주는 곳이 될 것이다. 결국 변화에 적극 동참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자가 새로운 증권 환경의 선봉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수년 후에는 증권시장 참여자들 가운데 이미 그 자리를 떠나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또 기존 전통적인 주도세력과 첨단 전자통신 기술을 내세운 진입자들은 새로운 네트워크안에서 국경을 초월한 경쟁을 벌이며 끊임없이 기술적 진보를 통한 가치창조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