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정부가 내년 1월 1일자로 시행되는 특별소비세 폐지를 4개월이나 앞서 발표하면서 가전유통업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4개월 후면 100만원 짜리 가전제품을 88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실제 수요가 대기수요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가전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뚝 끊긴 수요에 허탈해 했고 대부분의 유통점들은 정부를 원망하며 일손을 놓아버렸다.
이때 한 전자상가의 귀퉁이 음식점에서는 「우리 한번 뭉쳐 봅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테크노마트, 용산전자랜드, 국제전자센터, 세운상가, 현대상가, 123전자타운, 나진전자월드 등 7개 전자상가 대표들이 「우리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해 보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한 진정서를 관계기관에 제출키로 한 것이다.
이들은 우선 가전 3사를 쫓아다니며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또 전국 5000여 상인과 1만5000여 가전유통업계 종사자들을 대표해 완곡한 표현의 진정서를 청와대,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등 주요 기관에 제출했다.
결국 이들은 특별소비세 폐지 조기실시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고 해당 책임자로부터 국회 통과 즉시 시행한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뿔뿔이 흩어져 일관된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는 전자상가가 하나로 뭉치는 순간이자 압력단체로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전자상가 대표들은 의견조율을 통해 단체의 공식명칭을 「유통시장대표자회의」라고 정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이미 7차례에 걸쳐 공식 회의를 개최한 유통시장대표자회의의 활동은 특소세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한 이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들은 초점이 되고 있는 카드수수료 인하 문제도 카드사에 직접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달 29일에는 카드관계자들과 모임을 갖고 전자상가도 중대형할인점과 같은 2% 수수료를 요구했다. 카드사의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지난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가전업계의 무자료거래 만연과 그로 인한 거액의 탈루」 주장과 관련해서도 유통시장대표자회의는 경실련을 직접 방문해 항의했고 일정 수준의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유통시장대표자회의의 힘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시작한 한 가전업체로부터는 「정부측에 에어컨, 프로젝션TV 등도 특소세 폐지 품목으로 넣어 건의해 달라」는 제의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통시장대표자회의의 힘은 이들의 뒤에서 생업을 담보로 지지하는 수천명의 상인들에게서 나온다. 이 때문에 이들은 모든 일을 공동대표 명의로 진행한다. 또 확실한 분업방식을 택해 한 사람에게 과도한 업무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소세 관련 진정서를 전달할 때도 카드사에 요구서를 제출할 때도 각 상가 대표들은 철저하게 담당을 정해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테크노마트의 자체상표(PB)모델에 관심이 높은 유통시장대표자회의에서는 전체 전자상가를 기반으로 하는 PB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 전체 전자상가 PB모델 기획이 현실화될 경우 제조업체 중심의 가전유통이 유통업계 중심으로 옮아가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