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현상 한국엡손 부사장
정부에서 주관한 인터넷PC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당초 월 25만대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10만대밖에 판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한 프로젝트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견해, 혹은 국내 PC시장이 월 15만대에서 인터넷PC 출시이후 20만대 수준으로 커졌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성공작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같은 현상을 놓고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10월 20일부터 시작된 인터넷PC에 대한 주문은 25만대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PC 등장이후 PC시장이 과거에 비해 5만대 가량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용산에 있는 조립 위주의 중소업체들이 줄어든 수요로 인해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부품유통업체들이 힘든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규모는 5만대 가량 증가했지만 중소 조립업체의 시장은 5만대가 줄어든 형국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이에 영향을 받아 상가의 기타 다른 영업활동도 위축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인터넷PC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대기업들은 나름대로 마케팅 역량을 발휘하여 좋은 저가 기획제품을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판매수량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말도 많았던 인터넷PC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데이터를 우리에게 쏟아붓고 있는 중이다. 소득계층에 따라 달라지는 소비자 행태에 대한 기초 연구자료를 주었고, 소비자들의 PC가격에 따른 수요탄력성 실증자료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브랜드 이미지가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주변기기 구매도(Peripheral Acceptance Ratio)까지도 측정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PC산업이 자리잡은 이래 처음으로 측정 가능한 데이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자료를 정확히 분석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업체는 앞으로 적절한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고, 매일의 판매현황에 일희일비하는 회사는 앞으로도 주먹구구 마케팅 활동을 하다가 제풀에 지쳐버릴 것이다.
인터넷PC 프로젝트는 2000년 이후의 우리나라 PC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저소득층의 정보화를 주 타깃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그 미래를 예상해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먼저 저렴한 가격으로 PC를 구매할 수 있게 된 많은 수의 고객들의 향후 행동양태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소프트웨어 구매가 증가할 것이고, 인터넷서비스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또한 주변기기 판매가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증가할 것이다. 특히 프린터 수요가 3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정보산업의 인프라 자체를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둘째로 인터넷PC는 행망PC 가격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모뎀이 제외된 행망PC 단가는 인터넷PC 가격과 적절한 차이를 두고 결정되었다.
셋째로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로 선정되지 못한 다른 업체들의 월 서비스 사용료가 변화할 것이다. 단순히 가격을 인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패키지를 묶어 가격의 단순비교가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
넷째로 통신회선서비스가 다양해질 것이다. 케이블모뎀·ADSL·ISDN 등과 같은 신기술을 채용한 통신회선서비스뿐만 아니라 일반 전화선을 이용한 서비스도 사용료 계산방식을 달리한 새로운 서비스가 창출될 것이다.
또 무제한 통화정액제, 시간대로 분류한 50% 이상 할인시간대 등의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다. 이미 시작된 것들도 있지만 더욱 정교해지고 고객을 유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창출될 것이다.
다섯째로 2∼3년 후의 PC교체로 인한 대규모 수요가 예상된다. 끝으로 가구당 PC보급률이 60%를 넘게 됨으로써 일선 교육환경이 달라질 것이고 교육방식의 변화가 급격히 실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넷PC 프로젝트는 단기적으로는 상가업체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정보산업 인프라에 참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