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표준 경쟁
지난 84년 미국 IBM은 레이저를 이용해 PCB상에 비아홀(Via Hole)을 형성하는 기술을 고안했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PCB의 홀은 모두 관통(스루홀)형이었다. 비아홀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다층인쇄회로기판(MLB)은 작은 면적에 초소구경의 홀을 더욱 많이 가공할 수 있게 됐다.
독일 지멘스는 88년 엑시머 레이저를 이용해 20층짜리 MLB를 개발, 세계 PCB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세계 주요 PCB업체를 중심으로 레이저를 이용한 비아홀 가공방법이 소개되는 가운데 이 분야 원조인 미국 IBM은 지난 91년 레이저를 이용한 비아홀 공법을 체계화해 SLC(Surface Laminate Circuit)라고 불리는 새로운 MLB 제조공법(일명 Build Up)을 전세계에 공포했다.
여기서 유래한 빌드업공법은 이후 전세계 PCB업체로 확산됐으며 특히 일본 PCB업체들은 이 빌드업공법을 더욱 발전시켜 오늘날 주력 MLB공법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일본 PCB업체들이 빌드업공법을 개발한 서구 PCB업체를 제치고 이 분야 선두자리를 확보하게 된 까닭은 일본 전자·정보통신 세트업체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 관련 제조기반이 취약한 서구 PCB업체의 경우 빌드업이라는 훌륭한 기술을 고안하고도 막상 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찾아내지 못한 반면 일본 PCB업체들은 막강한 전자산업 제조기반을 등에 업고 다양한 빌드업공법을 개발, 적용할 수 있었을 뿐더러 양산과정을 통해 한차원 높은 생산 노하우까지 축적할 수 있었다.
일본프린트회로공업회(JPCA)에 따르면 일본의 빌드업 PCB 생산액은 지난 97년에 약 278억엔에서 지난해에는 656억엔 규모로 늘어났으며 올해의 경우 1000억엔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전세계 빌드업기판시장의 약 70%에 달하는 규모다.
참여업체도 꾸준히 늘어 지난 97년의 경우 마쓰시타전자부품·일본IBM·히타치·일본CMK·NEC·일본JVC·도시바·이비덴·메이코 등 10여개사에 불과했으나 올해의 경우 30여개사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기·대덕전자·LG전자·코리아써키트 등 한국 PCB업체와 대만 PCB업체들까지 빌드업기판시장에 가세, 세계 빌드업기판시장은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
빌드업기판이 이처럼 주력 MLB로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표준공법이 마련되지 못하고 업체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빌드업기판을 제작하고 있다.
현재 양산에 적용하고 있는 빌드업공법 중 가장 대표적인 공법은 레이저비아공법(일명 RCC)·포토비아공법(일명 SLC)·알리브공법·B²it공법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일본JVC·히타치·후지쯔·삼성전기·대덕전자·LG전자 등 한·일 주요 PCB업체들이 연합군으로 가세하고 있는 RCC공법은 현재 가장 보편화된 빌드업공법으로서의 자리를 굳히는 가운데 SLC공법은 일본IBM·NEC·이비덴 등이 사용하고 있다.
마쓰시타전자부품과 일본CMK 등은 알리브공법을, 도시바·에르나·프린테크·크로바 등은 B²it공법에 치중하고 있다.
이처럼 빌드업공법이 난립하자 일본·서구·한국·대만의 주요 PCB업체들은 최근들어 자사가 적용하는 공법을 세계 표준공법으로 육성하기 위해 소재·장비업체는 물론 신규 참여업체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세력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벌써부터 세계 빌드업공법 주도권을 둘러싼 PCB업계의 움직임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