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히타치 D램 합병" 배경과 전망

 일본의 대표적인 반도체업체인 NEC와 히타치사가 D램 사업부문을 완전 통합키로 전격 결정함에 따라 지난 97년부터 2년 가까이 세계 D램업체에 몰아친 생존을 위한 새판짜기 작업이 일단 완결된 것으로 보인다.

 양사가 통합됨으로써 세계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업체인 삼성전자와 △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일약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현대전자 △지난해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사의 메모리 반도체부문을 인수한 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그리고 △NEC-히타치 합병사의 빅4체제로 움직일 전망이다.

 이같은 4강체제는 무엇보다 이들을 제외한 군소 메모리업체의 존립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과 한국에 이어 제3의 메모리 신화를 꿈꾸는 대만 반도체업체에는 치명상이 될 공산이 크다.

 반도체분야의 시장조사업체인 미 IDC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두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11%와 6.2%로 각각 4위와 9위. 양사 생산능력을 단순 합할 경우, 세계시장 점유율은 17.2%가 된다. 이는 각각 20% 수준의 점유율을 가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 버금가는 수치이며 마이크론사의 점유율을 넘어선다.

 물론 이같은 단순 산술적인 분석이 그대로 현실화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첨단기술을 보유한 NEC와 히타치사 합병이 다른 합병사에 비해 뛰어난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제 경쟁업체들의 관심은 합병된 양사가 과연 얼마나 단기간 안에 통합작업을 완성시킬 수 있느냐는 점에 모아지고 있다.

 앞서 TI의 D램라인을 인수한 마이크론이 라인 통합작업에 상당한 기간을 소모하면서 오히려 제품개발력이나 생산성 부문에서 부분적으로 퇴보한 전례에 비추어 통합의 효과가 가시화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가 당분간 양사의 생산라인을 독립적으로 운영키로 한 것도 D램라인의 통합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한때 D램분야에서 최고를 자랑했던 NEC와 히타치가 가진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번 합병을 발표하기 이전에 NEC는 한국과 미국 업체에 빼앗긴 D램시장에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내년 여름까지 400억엔의 거금을 투입해 D램의 생산량을 현재의 2.5배인 월 3000만개 규모(64MD램 환산)로 확대하기로 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상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NEC의 설비증설과 히타치와의 합병 등 일련의 조치는 64MD램보다는 256MD램 이상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64MD램 가격이 안정되고 있는 시점에 결정된 양사의 합병결정은 양사가 가진 연구개발부문을 일원화할 경우, 한국업체와의 경쟁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궁극적으로 양사 협력의 가시적인 시너지 창출은 현대전자와 LG반도체 통합과 마찬가지로 256MD램부터 본격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NEC와 히타치의 합병은 세계 반도체산업 구조조정의 완결이 아닌 새로운 경쟁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호황기에 접어든 D램시장에서 4개 업체가 상호 공존을 모색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적으로 경쟁사에 비해 최소 6개월 이상을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삼성전자의 마케팅전략이 빅4체제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