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형반도체설계회사협회(ADA)가 와해 위기에 직면했다. ADA는 국내 주문형반도체(ASIC)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조직한 사단법인. 지난 97년 13개 ASIC업체가 친목도모를 위해 만든 협의회가 98년 1월 정보통신부 등록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모임에서 법인으로 탈바꿈한 이후 지난 2년여동안 ADA는 조직을 확대해왔다. 회원수도 처음 10여개에서 40여개로 늘었고 참여사들의 매출 역시 100%씩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올해 국내 반도체산업 구조의 중심축을 메모리에서 비메모리 분야로 이동시키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ADA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ASIC은 규모와 관계없이 뛰어난 설계능력을 가진 업체가 1위를 쉽게 차지할 수 있는 분야인데다 ADA는 관련 산업의 육성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SIC업체들의 구심체로 역할해온 ADA에 이상기운이 감지된 것은 최근의 일. 실무를 담당한 사무국이 활동을 포기하고 있는데 최악의 경우 ADA 해체로 연결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주변의 시각이다.
물론 실무부서인 사무국의 기능이 마비된다고 해서 ADA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안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ASIC업체들의 ADA에 대한 무관심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DA가 지금까지 펼쳐온 사업이나 활동은 ASIC업체들로부터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됐다』며 『이같은 현상은 업체들이 협회에 대해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ADA의 이름으로 발간한 연보나 ASIC산업 실태조사 자료, 벤처빌딩·연구조합 설립 추진, 정책과제 제안 등 여러 사업들은 업체들의 관심밖에서 진행했던 일이라는 얘기다. 컴퓨터·소프트웨어·정보통신 등 다른 업종의 협회들이 그런대로 관련업체들의 기대와 참여속에 유지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에 대해 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개별업체들이 협회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고 또 직접 참여해도 이익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회원사들의 무관심이 지금의 상황을 연출했다는 얘기다.
ADA가 속한 정보통신부 역시 ADA를 ASIC업계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보통신부·산업자원부 등 정부기관들은 직간접적으로 지원책을 마련, 산하 단체들에 대해 나름대로 힘을 실어주는 것을 관례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ADA에 대해서 정보통신부는 애착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이번 사무국 해체에도 정보통신부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DA 사무국은 현재 ADA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산하 반도체연구조합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중이다. 결정을 위해 12월 초 임시총회를 열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ADA는 독립단체에서 하나의 분과위원회로 위상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렇게 되면 활동폭이 더욱 좁아져 당초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사실 ADA가 결성되고 해체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제역할을 못하는 협회는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ASIC산업의 발전을 위해 만든 한 기관이 봉오리를 채 맺기도 전에 관련업체들과 정부의 무관심속에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그 기관이 아예 쓸모가 없다거나 몇몇 사람들의 공명심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닌 이상 이처럼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에 대해 지원책을 마련하라는 업체나 거창한 대책을 구상하려는 정부나 모두 한결같이 외쳐대는 「비메모리산업 육성」이라는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할 시점이다.
이일주기자 forextr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