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
CCR(대표 윤석호)의 성공 비결이다.
지식산업이 경제를 주도하는 정보사회에서 발상의 전환은 벤처 성공의 첫번째 덕목이다. 뉴턴에게는 사과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하게 된 실마리였다. 윤석호 사장에게 브라우저는 홈페이지를 보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미디어였다. 남들은 군소리없이 사각형 브라우저로 원하는 홈페이지를 찾아다녔지만 윤 사장은 브라우저에서 미디어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가능성은 오늘날의 CCR를 만든 「X2웹」으로 이어졌다.
CCR 성공의 두번째 열쇠는 젊음이다. CCR의 전직원 평균연령은 26세. 톡톡 튀는 개성으로 똘똘 뭉친 직원들은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산한다. 윤 사장은 『직원들의 개성이 너무 강해 MT 장소를 고르기도 어려울 지경』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이들의 개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CCR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벤처의 성공은 기술력이 좌우한다. 따라서 꾸준한 연구개발 노력은 벤처의 기본이다. 5명의 개발자들이 모여 출발한 CCR의 구성원은 현재 10배가 넘는 54명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42명이 개발 인력이다.
CCR의 미래를 밝히는 마지막 요소는 직원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다. 현재 CCR의 평균 연봉은 대기업 수준을 상회한다. 여기에 스톡옵션이나 우리사주와 같은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있다.
물론 CCR도 예전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95년 3월 설립한 CCR의 첫해 매출은 1억2000만원. 매출은 이듬해 3억원, 97년 10억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IMF의 충격으로 지난해 매출은 전년도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2억원에 그쳤다.
윤 사장은 그 시기를 『직원들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할 지경으로 인원 감축이 불가피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먼저 월급을 반납하고 함께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비로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시 생겨났습니다』라고 회상한다.
직원들이 한마음이 돼 열심히 일한 결과 올해 일본과 대만시장 개척에 힘입어 모두 3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내년 매출목표는 120억원이다. 이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올릴 계획이다.
올 5월 소프트뱅크재팬과 3년 동안 250억원 규모의 「X2웹」 수출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최근에는 대만 매크로웰에 2년 동안 66억원의 「X2웹」 수출을 성사,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세계적인 셰어웨어 사이트인 투카우스(www.tucows.com)에서 「X2웹」 온라인 판매를 시작, 미국 시장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다.
<윤석호 사장 일문일답>
-CCR란 회사명의 유래는.
▲「CoCuRyeo(고구려)」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대한민국의 정보통신 영토를 세계로 확대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미국 사람들은 유명 록밴드인 CCR와 이름이 같아 쉽게 기억하기도 한다.
-경영자로서 어린 나이가 문제가 될 텐데.
▲회사를 처음 만들 때가 스물 두살이었다. 처음에는 기업의 담당자들이 만나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젊은 감각을 인정해주는 인식이 높아졌다. 회사 차원의 경영 노하우를 더욱 높이기 위해 경험이 많은 인력을 곧 확충할 예정이다.
-코스닥 상장 예정은.
▲당장은 시기 상조라고 본다. 코스닥 거품이 빠진 후 상장해도 늦지 않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내년 6월경으로 예상된다. 나스닥 직상장도 고려하고 있다.
-「X2웹」 해외 진출의 계기는.
▲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방문 때 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현지 정보통신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그때 「X2웹」을 눈여겨봤던 일본 유통업자들이 일본 맥도널드사에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X2웹」의 첫번째 모양은 햄버거인 셈이다.
-「X2웹」 이외에 다른 사업 분야는.
▲게임 포털과 이동전화 인터넷 솔루션이다. 게임 포털은 포트리스(www.gamting.co.kr)의 인기를 기반으로 곧 착수할 것이다. 이동전화 인터넷 솔루션은 이미 NEC, 노키아, 한솔PCS, 신세기통신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기술력은 자신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