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PC업체들은 삼성전자가 지난 95년에 3억7700만달러의 거액을 주고 AST리서치사를 인수하자 깜짝 놀랐다.
삼성전자가 세계 10대 업체의 하나인 AST를 인수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PC기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AST는 첫해부터 극심한 수요격감이 발생하면서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이어 해마다 적자가 쌓이면서 4년도 되지 않아 지난해에 미국 투자자그룹으로 넘겨졌다.
그럼 삼성전자의 AST사업 실패요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관련업계의 의견은 다양하다. 실패하게 된 원인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현지화의 미비」라는 게 관련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그렇다.
삼성전자는 AST를 인수하자마자 경영진을 비롯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삼성전자 인력으로 빠르게 교체해나갔다. 이에 영향을 받아 AST의 영업, 연구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그만두기 시작했다.
중앙집권식으로 운용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영전략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지 사정에 밝은 핵심인력들이 빠져나가면서 AST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같은 현지화작업의 문제는 비단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우통신의 경우도 다른 어느 기업보다 먼저 미주시장을 중심으로 현지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대규모 수출을 추진했으나 현지화 실패로 「법인철수」라는 뼈아픈 경험을 해야 했다.
요즘 들어 삼보컴퓨터, 대우통신 등 국내 PC 제조업체들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 해외생산과 판매법인 설립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삼보컴퓨터의 경우 지난해 10월 KDS와 공동으로 미국과 일본에 각각 e머신스와 소텍사를 설립한 데 이어 올 7월에는 네덜란드에 생산법인 「TGN」과 「PC웨이」를 설립했다. 지금은 본격적인 중국 생산법인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대우통신도 프랑스에 국내 PC업체인 BTC정보통신과 공동으로 생산법인을 설립했으며 이와 별도로 현재는 미국 판매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PC업체들의 현지법인 설립이 붐을 이루면서 현지화 작업이 최대 현안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PC업체의 현지화 성공사례를 꼽으라면 컴팩컴퓨터, IBM 등 외국 주요 PC업체들의 경우를 많이 들게 된다.
일반적으로 외국 PC업체들은 우선 본사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종합적인 사업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각 해외지사나 법인에서 따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세계 경영전략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주는 차원이다.
각 지사인력은 대부분 현지인으로 채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기획, 가격정책, 마케팅 등을 현지 실정에 맞게 구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략」은 본사에서 세워주지만 전술에 해당하는 「실행계획」은 현지사정에 맞춰 별도로 수행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 업체는 현지법인을 운영하지 않고 제품을 수출할 경우라도 본사에서 출시한 수많은 제품을 시장별로 나눠 수요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을 집중적으로 공급하고 가격 또한 현지에 맞게 책정한다.
특히 마케팅과 관련해서는 본사에서 수립한 개괄적인 종합기획선상에서 각 지사가 독자적으로 추진한다.
현지 법인장이나 경영진을 대부분 국내에서 파견하는 우리나라 PC업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제2의 호황기를 맞고 있는 수출환경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우리 업체들이 내실있는 현지화 작업을 위해서는 지사나 현지법인이 본사와 별도로 현지 소비자들의 구매패턴, 기술동향, 수요예측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이에 맞는 과감한 경영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PC업체들이 수출 호황기를 맞아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