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업체들이 지난달 중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대만제 D램에 대해 내린 무피해 판정의 최대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진행중인 한국산 D램에 대한 반덤핑 재심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데다 대만업체보다 한수 위인 수출경쟁력을 가진 국내업체들의 대미 수출도 급증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난야·모젤바이텔릭·밴가드 등 대만업체들도 이번 판정으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받지 않게 됨으로써 예치관세를 돌려받는 혜택을 입게 됐다.
그러나 미국시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업체의 아성이 너무 커 대만업체의 수출 물량확대에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ITC는 2일(현지시각) 미 상무부에 무피해 판정 결과를 정식 통보할 예정이다.
◇무피해 판정의 배경 =ITC가 무피해 판정을 결정한 구체적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여러 정황으로 몇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제소자인 마이크론 등 미국업체들이 D램시장의 호황으로 피해 근거를 잃었다는 점이다. 미국업체들은 최근 D램 판매가격의 상승으로 매출이 크게 늘어나고 손익구조 또한 급격히 호전됐다.
마이크론의 경우 가동률 향상, 재고 감소로 대만산 제품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입증하기 어려운 상태다.
또다른 이유는 D램 판가의 상승. 판가는 대만 지진사태 이전부터 급상승했다. 대만산 D램의 시장점유율은 한국·일본산 D램에 비해 미미하기 때문에 전체 가격구조에 미칠 영향력도 미약하다. 지난해 대만산 D램의 대미 수출액은 4억5000만달러로 한국산 D램 수출액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이 판정은 진행중인 한국산 D램에 대한 반덤핑 재심에서 피제소자인 현대전자(구 LG반도체 포함)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의 권고에 따라 지난 9월 한국산 D램에 대한 반덤핑 판정의 근거 법령을 개정한 후 반덤핑 여부에 대해 재심에 들어갔으나 아직 반덤핑 판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판정으로 반덤핑 판정을 고집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국내업체는 시장점유율 등에서 대만업체와 사정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번 판정으로 국내업체도 대만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반덤핑 규제의 사슬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미 정부는 한국산 D램에 대한 재심결과를 내년 3월 말 또는 10월중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향후 일정과 전망 =마이크론이 ITC에 또다시 제소할지의 여부가 관심거리다. 제소 시한은 19일까지로 아직 여유가 있지만 마이크론이 이번 판정에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어 제소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제소 후 판정까지 1년이나 걸려 실효를 거둘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정은 반도체 수출에 대한 규제 장벽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뜻한다. 불황이라는 악재를 만날 경우 미국에서 반덤핑 규제가 다시 재연될 가능성도 있으나 규제 완화는 이미 대세다.
미국산 D램에 대한 반덤핑 판정을 준비중인 대만정부도 미국결정에 따라 무피해판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세계 반도체산업은 이제 공정한 규칙에 따른 글로벌경쟁체제로 돌입할 전망이다. 세계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굳힌 국내 D램업체들로서는 새로운 기회를 잡은 셈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