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자화폐 "왜 만드나"

 「한국형이냐, 개방형이냐.」

 국내에서도 IC카드에 기반한 전자화폐 시장이 무르익을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한국형 전자화폐(KEP)사업이 윤곽을 드러낸 데 이어 산업자원부도 전자화폐 개발에 본격 나섰다.

 한국은행은 이번달 금융결제원내에 시험용 전자화폐 시스템을 설치하고 내년 3월 서울 역삼동 지역에서 시범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산업자원부 역시 2002년까지 개방형 전자화폐 시스템을 개발키로 결정하고 참여업체를 물색중이다.

 관련업체에서는 이를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전자화폐의 세계적인 흐름이 점차 IC카드 기반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조치가 뒤늦은 감마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 가시화되는 한국형 전자화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국가예산만 낭비하는 현실성 없는 사업이며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의견마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산업자원부가 개방형 전자화폐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중복투자의 인상마저 주고 있다.

 한국형 전자화폐 사업은 지난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은행이 한국형 전자화폐 사업을 발표하고 금융결제원이 「금융 IC카드」 표준안을 개발할 때만 해도 국내 화폐정책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IC카드 표준과 기술이 급속도로 진척되면서 점차 한국형 전자화폐 사업은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개인간 거래가 불가능한 폐쇄형으로 설계된 한국형 전자화폐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결제나 거래가 이뤄지는 개방형 전자화폐에 점차 밀리게 된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 기반한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한국형 전자화폐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국내 암호알고리듬인 「SEED」 기반의 한국형 전자화폐는 전자화폐 국제표준 규격으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는 「EMV」 「몬데스」 등과 호환이 불가능해 온라인 전자거래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일부 사업참여 업체가 중도에 하차하고 당초 사업계획이 수정되는 등 몇번의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직불·신용·선불 통합카드 형태로 추진된 한국형 전자화폐는 결국 공중전화카드와 같이 단순히 선불기능만을 가진 카드로 전락하게 됐다. 시장이나 기술이 아닌 행정 위주로 전자화폐 사업이 진행되면서 현실성 없는 사업으로 변질돼 안팎에서 심심찮게 「한국형 전자화폐 무용론」이 불거져 나왔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은행과 금융결제원이 이같은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하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측은 『이미 97년 2월 한국형 전자화폐 사업을 추진키로 공식 발표한 이후 2년 넘게 기술개발이나 국산화를 추진해 중도에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며 『폐쇄형 전자화폐는 온라인 상거래에서 이용하기는 다소 불편하지만 암호나 인증 위변조를 방지할 수 있어 보안성이 뛰어나며 전체 통화량을 파악할 수 있는 등 몇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선불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교통과 전화카드 기능을 집어넣어 콤비카드로 업그레이드하는 등 활용범위를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다가오는 새 천년의 화두는 단연 「전자상거래」다. 특히 IC기술에 기반한 전자화폐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불수단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런 면에서 국제 표준규격을 지원하지 못하고 선불기능만을 가진 한국형 전자화폐는 한시적인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출발부터 순탄하지 않았던 한국형 전자화폐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더욱 험난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산업자원부가 개방형 전자화폐 개발을 선언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집하는 것은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전세계적으로 호환이 가능하고 암호체계에서도 국제규격을 수용할 수 있도록 사업 자체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과연 한국형 전자화폐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될지 벌써부터 관련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