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신웅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서울대 기계설계학 석사
◇서울대 기계설계학 박사
◇서울대 공학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정밀기계연구소 연구원
◇대우전자 이사(現 세탁기 연구소 선임연구원)
지구온난화와 도시화에 따른 생활온도 상승의 영향으로 가을철에도 식중독, 콜레라, 일본뇌염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발견된 적이 없는 공수병과 같은 특이한 전염병까지 다시 등장하고 있다. 또 해외 여행이 빈번해지면서 열대성 전염병까지 유입되고 있으며 이상기후까지 겹쳐 최근 몇 년간 세균성 전염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 병원체들의 저항력 증가로 전염경로 차단 및 치료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기존의 살균제보다 강하면서 공기와 물만으로 살균이 가능한 라디칼(Radical) 기술이 급부상하고 있다. 라디칼이란 원자·분자·이온 등의 상태를 말한다. 원자 주변에 존재하는 원자가 전자들은 하나의 궤도에 2개씩 짝을 지어 있게 되는데 2개의 짝을 이루지 못하고 궤도 내에 1개만 존재하는 전자가 1개 이상 있으면 이것을 라디칼 상태라고 한다.
이 상태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주변의 다른 원자나 분자·이온 들로부터 전자를 받아 짝을 이루게 되며 이 과정을 라디칼 반응이라고 한다. 이 라디칼 반응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이 상태를 「Radical:급격한, 급진적인」이라고 화학자들이 명명하게 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원자·분자·이온을 활성화된 상태로 만들고 활성화된 원자·분자·이온이 활성화된 에너지로 주변의 물질들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라디칼은 매우 짧은 시간에만 존재하며 주변과 빠르게 반응하고는 자연적으로 사라진다.
라디칼은 자연계 및 많은 화학반응 과정에서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아주 흔하게 존재하는 상태다. 라디칼 기술은 어떤 물질을 라디칼 상태로 만들어 원하는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다. 라디칼의 상태에 있는 원자·분자·이온은 「물질명+라디칼」 형태로 부른다.
라디칼은 이온처럼 물질의 어떤 상태를 말하지만 원자가 궤도 내의 전자 수가 1개인 때를 지칭한다. 물질의 양자수(+)와 전자수(-)가 차이 나는 상태를 말하는 이온과는 별개의 개념이며 어떤 물질은 이온이면서 라디칼이 될 수도 있다.
라디칼 중에서도 O, O-, O2-, OH, HO₂ 등 「활성 산소 라디칼」들은 강한 산화력을 가지고 있어 살균·탈취·유기물 분해 등의 효과를 가진다. 라디칼의 이러한 유기화학적인 작용은 강한 산화력을 가질수록 전자친화력이 강하다. 상대적으로 전자친화력이 낮은 타 물질의 전자적인 결합을 와해시킴으로써 유기물을 분해하거나 무해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라디칼 형태가 아니고 산화력도 상대적으로 낮은 과산화수소와 염소는 상대적으로 살균 시간이 오래 걸리며 빠르게 소멸하지 못해 잔존 냄새가 나는 등 문제가 있다.
라디칼의 살균과정은 세균의 세포막을 와해시키는 「용균」작용에 의해 빠르게 살균하는 효과를 낸다. 용균작용이란 라디칼이 세포막을 형성하고 있는 유기물 내의 탄소결합을 분리 혹은 변형시킴으로써 세포막을 와해시키거나 기능을 상실하도록 하는 것이다. 탈취과정도 방향족 물질의 구조를 변형시키거나 분해해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이와 유사하다.
대우전자는 최근 세탁기에 적용가능한 라디칼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활성산소 라디칼을 이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수산기 라디칼이 매우 강한 산화력을 가지고 있어 세탁기에 적용한 살균실험에서 세탁 18분 동안에 99.9%이상의 살균력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한국의류시험연구원의 검사결과 밝혀졌다. 탈취력 실험에서도 암모니아, 황화수소 등에 대해서 95.0%이상의 탈취력을 얻었다(한국원사직물시험연구원). 또, 음식물 분해, 농약제거 등의 추가적인 효과들은 검증단계에 있다.
기존의 살균방법으로는 자외선을 이용하는 방법(햇볕에 말리기, 자외선 살균기), 삶거나 찌는 방법(습식 멸균기, 빨래 및 젖병 삶기), 살균제를 투입하는 방법, 세균을 태우는 방법 등이 있다.
그러나 자외선은 수중에서 효과가 거의 없고 삶거나 찌는 방법은 적용대상이 소형이어야 하는 등 한정적일 뿐 아니라 별도의 작업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번거롭다. 살균제를 사용하는 방법 또한 별도의 작업 및 비용이 발생하며 살균제를 다시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또한 세균을 연소하는 방법은 가장 오래된 살균방법으로 옛날에 전염병이 만연할 때 감염된 의복이나 동식물을 태우는 것으로 제품의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라디칼을 이용한 기술에는 2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이산화티타늄(TiO₂)등의 성분을 제품의 표면에 도포하고 이곳에 햇빛이나 자외선을 쬘 때 발생하는 수산기 라디칼을 이용해 제품의 표면을 살균하는 항균 수준의 살균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세균이 번식하거나 전이되는 곳에 라디칼을 투입해 살균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방법은 제품의 표면에 접촉하는 세균만을 살균할 수 있으며 공기나 물 속의 세균을 살균하려면 공기 혹은 물을 제품 표면으로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소극적인 살균방법이다. 후자는 이번에 대우전자가 개발한 라디칼 기술로 세균이 존재하는 곳에 라디칼을 투입해 살균하는 적극적인 살균방법이다.
일반 공기와 물을 가지고 몇 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살균력을 가진다는 것만 보면 참 신기한 과정이다. 이 과정을 유사한 제품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살균제로는 과산화수소가 있는데 과산화수소는 산소와 수소의 특이한 결합 형태다. 물의 화학식이 H₂O인 반면에 과산화수소는 H₂O₂다. 반응할 물질과 접촉하면 H₂O와 O 혹은 2개의 OH로 분해되면서 O 혹은 OH가 살균작용을 하게 된다. 즉, 산소와 수소의 결합형태에 따라서 H₂O인 일반 물도 되고, 산소 원자가 하나 더 첨가된 H₂O₂로 과산화수소수가 되어 살균력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음용수(수돗물)의 정수에 사용하는 살균제로는 산소계인 오존과 염소계인 염소가 있고 세탁에 사용하는 살균표백제도 크게 산소계와 염소계로 나뉜다. 산소 또는 산소와 수소의 결합형태로 구성되는 산소계의 경우 대표적인 것으로 과탄산나트륨(Na2CO₃·3H₂O₂)이 있다. 이것이 물속에서 용해가 되면 Na₂CO₃와 3개의 H₂O₂로 분해가 되고 이중에서 과산화수소수에 해당하는 H₂O₂가 살균표백의 기능을 한다. Na₂CO₃는 별다른 기능은 없고, 단지 과산화수소수를 고체 상태로 유지시켜서 고체상태의 제품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을 한다.
대표적인 염소계는 국내 정수장에서 사용하는 염소를 들 수 있다. 염소(Cl2)가 물과 만나 만드는 차아염소산(HClO)이 유기물과 만나면 염화수소(HCl)와 산소(O)로 분해되면서 산소가 살균을 하게 되며 장마철에 종종 발생하는 현상처럼 염소를 과량 투입시 잔존 HClO가 일반 가정집까지 도달하여 염소(Kalk)냄새가 심하게 나게 되는 단점이 있다. 위에서 보듯이 산소계 살균제들은 산소만의 결합 혹은 산소와 수소의 결합에 의해 살균력을 가진다. 산소와 수소는 물 자체가 산소와 수소로 구성된 것이라 자연환경으로부터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특히 산소는 대기중의 23%를 차지한다.
자연계에 널리 존재하는 산소와 수소를 원하는 형태로 결합시키면 살균기능을 갖게 할 수 있다.
대우전자의 라디칼 기술은 바로 제품의 형태를 유지하는 등의 기능을 갖고 있는 첨가제나 고형제 등이 없이 단순히 대기중의 산소와 수중의 물만을 이용해 순수한 살균성분만을 발생시켜서 살균 및 탈취를 할 수 있도록 한 세계 최초의 상용라디칼 살균 기술이다.
대우전자가 개발한 라디칼 발생기는 공기방울 발생부, 이온 발생부, 전이금속 촉매부로 구성돼 있다.
공기펌프에서 나오는 공기 중의 산소에 음이온 발생기로 고전압을 가한 후 전이금속 세라믹 촉매를 통과시켜서 발생기 산소(O:발생기 산소 라디칼)로 변환하며 이 발생기 산소가 물속에서 물 분자와 반응하여 수산기 라디칼을 만든다. 발생기 산소도 살균력과 탈취력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 이 수산기 라디칼(OH)이 매우 강한 살균력과 탈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라디칼 기술은 세탁기 뿐만 아니라 냉장고·가습기·식기세척기·야채나 과일 세척기·정수기·탈취기·공기청정기 등 가정용 기기를 중심으로 아주 광범위하게 적용해 살균·소독·탈취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의학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식수용 정수장에서 사용하는 염소에 의한 살균방법은 염소가 세균의 생리작용을 막아서 살균하는 생화학적 과정을 이용한 것으로 살균시간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며 최근에는 염소에도 죽지 않는 세균이 검출되고 있다.
산소계 라디칼 기술은 살균제를 투입하는 방식을 벗어난 획기적인 살균방법으로 특히 수중에서 효과가 크다.
산소계 라디칼 기술은 기존의 식수용 정수장에서 살균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염소 및 오존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기존의 항생제 및 살균 방법으로는 죽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세균의 번식이 용이하게 됨에 따라서 세균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다. 세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균성 병원균에 감염되고 나서 의학적 치료를 하는 것보다 감염되기 전에 세균을 차단하는 근원적인 방법이 효과적이다. 세균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조심과 주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균의 발생과 번식이 용이해 지면 세균전이 및 감염의 확률도 높아지게 됨으로 세균의 발생은 물론 번식이나 전이 및 감염의 모든 단계에서 적절한 차단 대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 세균의 위험성이 높은 곳에서는 가급적이면 항균 제품을 사용하는 등 개인적인 노력과 정수장을 완전하고 안전하게 살균하려는 국가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다. 라디칼 기술은 별도의 첨가제 없이 대자연 속의 살균성분을 이끌어 내고 활성화시켜서 살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혁신적인 살균기술이라 의식주의 인간생활 전반에 걸쳐 세균과의 전쟁에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