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산환경에 시스템 개방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전산환경이 한 시스템업체로부터 일괄적으로 공급받아 가동하는 단일벤더에서 여러 시스템업체에서 시스템을 공급받아 운영하는 이른바 멀티벤더화로 바뀌고 있다.
일반 기업이나 통신업체 등은 물론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손꼽히는 금융권마저 시스템의 멀티벤더화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이같은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처럼 전산시스템의 멀티벤더화 경향이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고객의 입장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시스템벤더의 입장에서는 컴퓨터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격파괴전쟁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멀티벤더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일단 고객입장에서 시스템 구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을 꼽을 수 있다.
IMF 이전에 전산책임자들은 시스템의 안정성에 최우선을 두고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멀티벤더보다는 비용이 더 많이 들더라도 시스템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싱글벤더를 선택했다.
하지만 IMF 이후에는 비용이 가장 큰 고려요소로 작용하면서 다소 안정성이 떨어지더라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멀티벤더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또 전산환경이 유닉스 환경으로 전환되면서 어느 업체의 시스템을 사용하더라도 연결이 가능해졌으며 공급업체나 시스템간의 기술, 성능차가 거의 사라진 것도 멀티벤더화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한 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과, 그동안 전산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어떠한 시스템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축적한 것이 멀티벤더화를 촉진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 그동안 주요 시스템공급업체마다 전략사이트로 정해 공을 들였던 고객들이 경쟁업체의 시스템을 한두대씩 도입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는 것도 바로 시스템공급업체간 경쟁으로 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실제 신한은행의 경우 계정계 업무는 유니시스의 메인프레임, 카드 및 정보계는 HP의 유닉스 서버, 국제계 업무는 후지쯔의 메인프레임을 각각 사용하고 있으며 이같은 상황은 일반 기업은 물론 가장 보수적이라는 금융기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안경수 한국후지쯔 사장은 『최근 국내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멀티벤더화는 세계적으로는 이미 보편화된 현상으로 홍콩상하이은행, 시티은행 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며 『이제 시스템업체들로서는 과거의 실적과 상관없이 현재 고객들에게 얼마만한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영업에서 성공하는 관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멀티벤더의 경향은 시스템업체들에는 한번 시스템을 팔아도 그 다음 시스템 확장시 자사의 시스템이 또 구매된다는 보장이 없는, 그야말로 야박하고도 척박한 환경으로 내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를 구매하는 사용자들에게 더욱 싼 가격에 더욱 좋은 조건으로 시스템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국내 정보기술(IT)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