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거나 이상이 있을 때 스스로 치유능력을 갖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런데 무생물인 반도체가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얼마나 놀랄 만한 일일까.
최근 태양전지에 이용되는 반도체에서 그와 비슷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텔아비브대학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학의 공동연구진에 의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태양 빛을 전기로 바꿔주는 태양전지는 태양 에너지를 완벽하게 이용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의 전원공급장치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물질들은 모두 매우 값이 비싸거나 방사선 등 여러 환경 요인들에 대해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실험용 반도체가 매우 안정적인 물질인 이셀렌화 구리인듐갈륨(Copper indium gallium diselenide)이라는 것인데 태양전지를 만들 때 극히 소량이지만 꼭 필요하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셀렌화 구리인듐갈륨의 구조가 너무 복잡해 쉽게 망가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우주 공간을 비롯한 여러 극한 환경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손상없이 견뎌 과학자들은 미스터리로 여겨왔다.
연구팀이 유사물질인 이셀렌화 구리인듐의 결정을 유럽 싱크로트론 연구설비의 고에너지 X선으로 관찰한 결과 이셀렌화 구리인듐의 어떤 원자들 사이의 결합이 종종 상대적으로 쉽게 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또 구리원자들이 이 반도체 물질 내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는 무생물, 그것도 고체 상태의 물질에서는 극히 드문 일로 연구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원자의 이동성이 거의 금기시되는 전자공학적 물질에서는 더더욱 흔하지 않은 현상이 발견되고 더구나 안정성이 높은 반도체에서 그러한 이동성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 현상을 발견함으로써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반도체 안정성에 대한 이론을 뒷받침했다.
즉, 어떤 원자 결합이 일단 깨어지게 되면 결정 내부에서 움직일 수 있는 구리 원자가 방황하다 결합이 깨어진 곳에 도착해 다시 원래의 결합상태를 복원하게 되는데 이러한 자가치유 원리는 평형 상태에 도달해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물질의 성향에 달려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같은 자가치유 능력 때문에 이셀렌화 구리인듐갈륨은 인공위성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제대로 태양전지를 작동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