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가 현대전자의 D램에 대해 고율의 덤핑 마진율을 적용한 것은 뜻밖의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과 한달 전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대만산 D램에 대한 무피해 판정을 내려 상무부로 하여금 덤핑 판정을 철회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상무부의 이번 판정이 미 마이크론사의 로비에 따른 의례적인 경고성 메시지로 풀이하면서도 대미 수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 사태 진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배경
이번 판정에 대한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은 대만산 D램의 무피해 판정으로 얼굴에 먹칠을 한 상무부와 미 마이크론사가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현대전자를 새로운 「마녀」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높은 덤핑 마진율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된다.
김대수 현대전자 해외영업 총괄이사는 『우리 회사가 미국에 수출한 D램은 모두 현지 법인을 통해 공급하고 있는데 상무부에서 이번에 덤핑 판정한 대상에는 현대전자와 무관하게 유입된 물량이 포함돼 있다』면서 보복성 짙은 판정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전자는 또 『상무부는 우리 회사가 제출한 검증된 회계자료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왜곡된 자료를 사용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반도체업계는 특히 제소자인 마이크론사가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판정이 나온 것에 주목했다. LG반도체와 통합함으로써 삼성전자와 함께 막강한 경쟁자로 부상한 현대전자를 초기부터 옥죄어놓겠다는 마이크론의 전략이 이번 상무부 판정에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상무부는 상무부대로 대만산 D램에 대한 ITC의 무피해 판정으로 떨어진 위상을 높이기 위해 다시 반덤핑의 칼자루를 쥐고 나왔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향후 영향
국내 업계는 이번 상무부의 판정에도 불구, 국산 반도체의 대미 수출 경쟁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관측했다.
국내 업계는 이미 미국 현지에서 D램을 생산, 공급하는 체제를 갖춰 덤핑 판정의 대상인 국내 생산 제품의 의존도를 낮춰놓았기 때문이다. 현대전자는 지난 98년 이후 미국 오리건 공장에서 미국 판매 D램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어 이번 판정에 따른 관세 예치 부담과 앞으로의 사업 전개에서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전자의 대응 전략
현대전자는 이번 판정을 무리한 보복조치로 규정하고 국제무역재판소(CIT)에 즉각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제소후 판정까지는 1년 남짓 소요된다.
현대전자는 이 기간 동안 뜨거운 법정싸움을 벌여야 하는 부담이 있으나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현대전자는 특히 상무부와 별도로 내년 3월께 나올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실사 결과에서도 자사에 유리한 판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TC는 이미 대만산 D램에 대한 무피해 판정을 내린 바 있다.
현대전자는 설혹 패소해 상무부의 결정이 확정되더라도 전혀 불리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내년 이후 D램 시장이 낙관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