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LCD 韓 vs 日.대만 체제 배경

 일본과 대만업체들이 D램 반도체와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분야에서 활발히 제휴하는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세계시장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날로 막강해지는 한국업체들의 힘에 밀려 설자리를 잃고 있는 일본과 대만업체들이 탈출구로 제휴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올해 시장 호황의 틈을 타 그동안 쌓은 아성을 더욱 확고히 다졌다. 세계 D램 시장을 확실히 장악했으며 TFT LCD 시장도 그동안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결실을 착실하게 거둬 세계 1위에 올랐다.

 그 그늘에 일본과 대만업체들이 있었다. 두 나라 업체들은 한국업체에 시장을 선점당해 올해 호황의 결실을 전혀 누리지 못했으며 오히려 매출액이 줄어든 업체도 나왔다. 이러한 사정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D램 시장은 한국 업체를 중심으로 상위업체들의 독과점 체제가 들어서면서 일본과 대만업체들이 낄 자리는 없어졌다. TFT LCD 분야의 경우 한국업체들과 같이 대대적으로 투자하기에는 이미 때를 놓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과 대만업체들은 서로 눈을 돌렸으며 제휴하기 시작했다. 일본 히타치와 대만 UMC의 제휴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다른 일본업체와 달리 메모리사업을 강화하는 히타치는 NEC와 D램 합작사업을 승부수로 띄웠으나 최근 한국업체와 인텔 등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차세대반도체 컨소시엄에서 빠지는 수모를 겪었다. 독자적인 행보를 위해 히타치는 UMC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아들였다.

 TFT LCD 분야의 제휴도 한국업체를 따라잡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일본업체들은 경기 침체와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이 분야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기 어려운 처지다. 대만업체들도 이 사업을 확대하려고 하나 낮은 기술력이 걸림돌이다.

 따라서 투자 여력이나 기술력에서 한국업체에 한수 뒤지는 일본과 대만업체들은 힘을 합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두 나라 업체의 제휴에 대해 국내 반도체, TFT LCD 업체들은 여유있다는 표정.

 국내 업체 관계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투자하고 기술을 연마한 우리와 이제서야 투자를 시작한 일본과 대만업체의 격차는 꽤 벌어져 있다』면서 『당분간 우리를 뒤쫓아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생산기술면에서 국내 업체들은 일본과 대만업체들보다 몇 걸음 앞서 있기 때문에 양산 경쟁에 들어가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일본과 대만업체의 제휴를 가볍게만 봐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당장 내년에 반도체, TFT LCD 시장에 일본과 대만업체의 제품이 쏟아져나오면 가격경쟁이 벌어지고 전반적으로 가격이 떨어져 국내 업체의 수익성 하락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본의 기술력과 대만의 풍부한 자본과 생산설비가 결합하기 때문에 우리 업체와 경쟁하는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며 이에 국내 업체들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업체들은 256M D램과 같은 차세대 메모리 제품과 더욱 가볍고 해상도가 밝은 고급 TFT LCD 제품의 개발과 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삼성전자가 애플·컴팩 등과 제휴하고 LG전자가 필립스와 합작했듯이 국내 업체가 구미 선진업체와 제휴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