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새해 특집> 네트워크형 인재를 키워라

빌 게이츠와 손정의는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성격의 천재들이다.

 이 두 사람이 다른 천재와 차별화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천재라는 점이다. 이들은 다 미국과 일본의 최고 갑부다. 인류는 유사이래 숱한 천재들을 배출했지만 그 어떤 천재도 빌 게이츠나 손정의만큼 경제적 부를 축적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천재가 자신의 역사 기여도와 무관하게 박덕한 인생을 마무리했지만 이들 두 사람만은 천재이면서 동시에 거부의 반열에 오른 첫 사례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정보시대의 천재로 이름 짓는다.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와 손정의의 천재성은 뚜렷이 구분된다. 빌 게이츠가 미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정보기술 혁명에 직접 나선 마케팅과 엔지니어링의 천재라면 손정의는 정보사회에서 과연 누가 천재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 「눈」 을 가진 천재다.

 빌 게이츠는 MS­DOS를 시작으로 시대를 변화시킬 기술을 늘 한 발 앞서 개발, 세상을 이끌어 왔다. 반면 손정의는 기술적으로는 보잘 것이 없다. 뛰어난 엔지니어도 아니다. 손정의는 그러나 누가 천재인지를 알아보는 능력을 가졌다. 야후의 제리 양, E트레이드의 크리스토스 등 빌 게이츠에 버금가는 천재들을 알아보고 이들에 투자했다. 손정의는 그 결과로 「인터넷의 제왕」이 됐다.

 천재도 천재이지만 천재를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천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사회에서 빌과 손 두 사람 가운데 과연 누구의 천재성이 더 빛을 발휘하게 될까.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손정의의 천재성이 훨씬 강력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사회는 곧 네트워크 사회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는 씨줄과 날줄이 서로 얽혀 있는 구조다.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도 명확지 않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순환한다. 마치 불교의 연기론을 연상시킨다.

 네트워크의 총아는 인터넷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 유사 이래 인간의 인지능력이 실현한 모든 것들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정보의 바다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네트워크의 공간이다. 누구나 이 네트워크의 공간에 올라 타면 전통적 의미의 천재가 될 수 있다.

 리눅스의 예를 보자. 정보사회 도입기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MS 윈도를 위협하고 있는 이 리눅스의 「탄생설화」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윈도 하면 곧 빌 게이츠이지만 리눅스는 과연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어떤 사람이 이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핀란드의 공학도인 리누스 토발즈라는 사람이 운용체계(OS)의 원형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것이 리눅스의 시발이다. 전세계 모든 학자, 연구원들은 저마다 이를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아 성능을 개량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 다시 인터넷에 올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리눅스는 오늘날 윈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고 이같은 인터넷을 통한 리눅스 업버전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연구성과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리눅스는 네트워크가 탄생시킨 새로운 스타다. 시작도 끝도 없이 시공을 넘나드는 네트워크의 세계에서만 리눅스의 발전이 가능했다. 앞으로는 무수히 많은 「리눅스」가 등장할 것이다. 세상이 네트워크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기술적 천재성에 견줄 만한 사람은 앞으로도 많지 않겠지만 세상 모든 준재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보완한다. 기술의 천재, 기술의 완벽성은 더 이상 「스탠드 얼론」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빌 게이츠보다는 오히려 손정의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우리도 천재를 만나야 한다. 아니 천재를 길러야 한다. 어디 천재뿐인가. 무한 경쟁시대 국가 경쟁력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지난 1000년이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었다면 새로운 1000년은 디지털, 정보사회다. 기존의 모든 개념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사회가 온 것이다.

 네트워크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천년대계라고 규정하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네트워크는 공유와 동시성이 특징이다. 가정의 PC를 네트워크로 묶는다면 온나라가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시장의 크기도 덩달아 폭발하게 된다. 이것이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 규모로 퍼져나가면 양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측정하기 불가능한 수준이 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인터넷 가입자가 600만명이라지만 2000만명의 이동전화 가입자가 인터넷에 연결되면 그 즉시 인터넷 사용인구는 2600만명이 된다.

 네트워크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동시에 진행된다. 마우스 클릭 하나만으로 오대양 육대주의 모든 것이 순환된다. 원하기만 한다면 편지 한 장을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보낼 수도 있다. 뉴욕 월가 투자자의 클릭 한번으로 한국의 금융권이 마비되는 광속경제는 이미 우리도 경험해 봤다. IMF 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네트워크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 네트워크를 지배하려면, 아니 지배는 고사하고 그 속에 올라 타 「생존」이라도 하려면 돈과 시간이 요구된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국가의 몫이고 이를 통해 부를 창출하려는 기업의 일이다. 이들이 다른 나라의 정부나 기업에 뒤처진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문제는 네트워크만 갖춘다고 천년대계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터넷이 보여주는 것처럼 네트워크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스피드가 핵심이다. 누가 좀 더 빠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느냐가 한 나라와 사회의 기본적 경쟁력이 된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뛰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2002년까지 전국을 광케이블로 연결,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전국민에게 제공한다는 대역사(大役事)를 진행하고 있고 기업은 기업대로 초고속 인터넷서비스를 겨냥한 신기술, 콘텐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에게 남겨진 것은 하나. 바로 손정의의 「눈」을 배워야 한다는 과제다.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것과 이를 제대로 활용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은 간단한 스킬이다. 누구나 접근하는 방법만 익히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부를 창출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개인의 계발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바다」와 「정보의 쓰레기장」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 정보인지를 정확히 짚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신지식인이라 불러도 좋고 소프트웨어적 인간이라 이름붙여도 관계 없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그에 적합한 사고와 행동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는 교육과 사회화 과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네트워크에서 소외돼 새로운 천년에도 다시금 후진국으로 남겨질 수는 없다. 손정의는 지난 50년간의 정보산업은 아날로그기술­아날로그서비스­디지털기술의 단계로 성장해 왔고 이제는 디지털서비스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한다. 손정의는 디지털서비스의 매출은 이전의 3단계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큰 규모를 보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 원동력이 네트워크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