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다.
지구촌이 하나의 시장으로 단일화되고 관세 등 각종 규제수단이 퇴조하면서 국제적인 기술표준만이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다가서고 있다.
특히 표준이 특허를 지배하는 21세기에는 표준화의 중요성이 한 국가의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많은 국가들은 표준화전문기구를 만들고 정부와 학계, 연구계, 기업이 하나가 돼 자국의 표준화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독자적인 표준화 제정, 국제무대에서 자국의 표준화를 국제표준으로 관철하는 데 국가 차원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은 88년부터 관련법령을 제정해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원을 확대개편, 국가표준활동에 대한 총괄조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표준에 대한 국가단일체체를 구축, 국제교역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기반을 확고히 구축한 것이다.
유럽도 단일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지역내 기술을 국제규격화함으로써 세계시장 선점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또한 통상산업성 산하 공업기술원에 국제표준활동부서를 신설하는 등 세계표준을 향한 입지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선진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도 선진국 표준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최근들어 우리나라 대표가 국제표준화기구 대표를 맡는 경우가 있지만 아직 전체 활동면에서 선진국 전문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세계는 WTO라는 신자유무역질서로 빠르게 이행되고 있으며 관세 대신 국제표준이 자국의 기술과 이익을 대변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어 세계 각국은 국제표준 제정시 우위 확보를 위해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밝힌다. 특히 『연간 1000여건이 개최되는 국제표준회의 중 우리가 참여하는 것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세계는 지금 무선인터넷에 대한 표준화 경쟁에서 필사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선인터넷은 전세계를 단일통화권으로 묶어 작고 가벼운 휴대형 단말기를 이용, 지구 반대편과도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기술로 시장성장성은 무한하다.
무선인터넷의 표준은 지난해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텔레콤99」에서 왑(WAP)표준을 채택한 시제품들이 전시돼 왑이 무난히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MS)가 그 자리에서 「스팅거」를 발표하고 세계 주요 무선통신사업자들이 여기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무선인터넷 표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스팅거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지만 MS가 무선단말기 시장을 겨냥, 총 85억달러를 투입해 지난 98년부터 추진해 온 프로젝트로, PDA와 PCS를 결합한 새로운 지능형 무선단말기 개발을 위해 윈도CE를 운용체계로 이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왑은 국내 이동전화 5사를 비롯,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이 왑표준을 채택한 장비와 서비스 개발에 들어갈 정도로 세계표준 정착에 주력하고 있다.
왑은 이동전화나 PDA, 세트톱박스 등 각종 이동형 단말기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토록 하는 무선인터넷 기술로 에릭슨과 노키아,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모토롤러 등이 주도해 만든 것으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멀티미디어 국제표준회의」는 멀티미디어산업의 핵심기술인 정지영상, 동영상 압축기술 그리고 호환성 등을 표준화하는 회의로 세계 각국은 저마다 신기술을 소개했으며 우리나라도 2개 분야에서 전체기술의 10%에 해당하는 50여건의 고유기술을 표준초안으로 제안했다.
이어 12월 하와이에서 개최된 멀티미디어 전문위원회 회의에서 멀티미디어정보를 통신네트워크나 저장매체에 고속으로 저장·검색하기 위한 기술인 MPEG7에 우리가 제안한 12개 기술이 위원회작업반과 실험모델로 채택됐으며, 동영상 휴대폰과 차세대 대화형 멀티미디어 방송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동영상 압축기술인 MPEG2 버전 2에 삼성전자가 제안한 「비트분할 오디오 부호화 기술」 등 8개의 기술이 세계규격으로 최종 확정되는 등 멀티미디어 분야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그나마 세계표준화사회에서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캐나다에서 AT&T와이어리스, 브리티시텔레컴, 에릭슨, 노텔네트워크 등이 모여 차세대 이동통신시스템의 인터넷기술에 대한 공동표준안을 마련키로 발표했다.
이때 열린 운영자조정그룹회의에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시스템인 제3세대(3G) 무선통신의 규격통일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휴대폰을 이용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비디오를 포함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받거나 고속인터넷 접속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임베디드 기기에 적용되는 실시간 자바표준을 둘러싼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MS, 휴렛패커드(HP)와의 주도권 경쟁도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오므론과 에이오닉스, 피에니얼, 에릭슨 등이 MS와 HP에 동조하고 있어 최강자인 선과 한판 승부가 예상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기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CSP기판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세계 주요 반도체 및 PCB업체간의 세불리기 경쟁도 뜨겁다.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삼성전기가 CSP기판 표준화에 참여하고 있는데 삼성은 인텔과 램버스 등이 참여하고 있는 「TV62 개발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TV62 개발컨소시엄은 각종 CSP개발 컨소시엄 중 가장 영향력이 크고 상용화된 정도가 앞선 마이크로BGA 관련 워킹그룹으로, 지난해 컴퓨터용 메모리모듈로 채택하게 될 램버스D램 모듈용 단명 마이크로 BGA기판의 수용향상 기법을 개발했으며 올해는 휴대형 정보단말기 및 위성통신 멀티미디어기기에 장착될 양면 및 다층 기판용 마이크로 BGA기법의 기술 표준화 작업을 논의할 계획이다.
강원대 김형중 교수는 『21세기에는 표준화를 주도하는 국가가 기술선진국 지위를 누릴 것으로 보여 세계 각국은 독자적으로 때로는 전략적 연합을 통해 기술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면서 『우리는 짧은 표준화 역사에도 불구하고 TDX10, D램, CDMA, DTV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다』고 말했다.
우리의 표준화 역사는 10년이 채 못된다. 실질적으로 표준화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진 것은 지난 93년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분야에서는 선진국과 대등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분야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 표준화에 대한 선행기술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과, 표준화에 대한 투자 부족, 표준화 전문가의 부재 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양봉영기자 by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