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사이버세상의 주역은 과연 누구일까.
지금까지 사이버세상의 주역으로 지목돼왔던 네티즌, N세대 등을 미래 정보사회의 주역으로 표현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네티즌이라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에 대해 생소하던 시기, 온라인통신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수 젊은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N세대라는 단어도 컴퓨터에 익숙하고 감각적인 10대 젊은이를 지칭할 뿐 사회전체를 이끄는 시민세력을 포괄적으로 나타내기는 어렵다.
많은 전문가들은 사이버티즌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21세기 시민사회를 표현하고 있다.
사이버티즌은 컴퓨터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양도 갖춘 기성세대를 아우르는 미래의 시민계층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나이, 계층에 상관없이 정보통신기술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시민들이 모두 포함된다.
정보화가 급속히 진전됨에 따라 젊은층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장년층도 불가피하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질서에 편입되고 전통적인 인간관계, 경제활동도 자연스럽게 재편된다.
사이버티즌은 바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살아갈 우리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며 21세기 시민사회를 규정짓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기 사이버티즌으로서 우리가 겪게 될 변화상은 어떠할까.
60∼70년대 SF영화에서 묘사했던 2000년대 신인류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대체로 우주복같은 복장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 고층빌딩 만한 괴물컴퓨터가 인류를 지배하는 기계문명 등 현대인들에게 별로 설득력이 없는 공상으로 채워져 있다.
부모세대의 상상력이 결정적으로 빗나간 이유는 컴퓨터기술의 발전방향을 잘못 예상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에 도전할 만한 지적능력을 발휘한다는 일반적인 예상은 들어맞았으나 집채만큼 거대한 중앙컴퓨터 한 대가 모든 인간의 삶을 통제한다는 불길한 상상력은 다행스럽게도 완전히 틀리고 말았다.
당시에는 수억대의 컴퓨터가 연결된 정보의 바다, 인터넷이란 개념은 보통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21세기의 문턱을 막 넘어선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는 10년 뒤 사이버티즌이 살아갈 미래사회를 자신있게 예측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 진행되는 인터넷혁명의 큰 물줄기를 바탕으로 유추할 수 있는 몇가지 사회변화만 열거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견뎌야 할 사회적 변화는 실로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이버티즌에게 있어 직장생활과 사적인 가족생활의 구분은 점차 모호해질 가능성이 높다.
직업상의 동료와 개인적인 친구, 가족 모두와 실시간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므로 모든 인간관계를 전방위 형태로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즉 회사업무를 보는 도중에도 수시로 자녀의 숙제를 돌봐주거나 고등학교 동창생과 정치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양한 채널로 들어오는 정보를 회사가 모두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당수 업무를 사무실 밖에서 네트워크로 처리하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직장상사가 복장문제나 증권사이트에 접속하지 말라는 등 깐깐한 휴먼매니지먼트를 시행할 수 없게 된다.
재택근무가 상당히 보편화하더라도 출근이라는 버릇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는 없다. 사이버티즌의 근무형태로 설득력 있는 가설 중의 하나는 「사무방」이다.
현재 성업중인 PC방 업계의 놀라운 적응능력으로 볼 때 네트워크와 각종 사무용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공용 「사무방」으로 출근해 대부분의 직장업무를 처리하는 신종 근무형태는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다. 대부분의 부인들은 남편과 하루종일 집에서 마주치는 근무환경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택가에서 200∼300m 이내에 위치한 단골 「사무방」은 집안일을 돕기도 좋고 출퇴근도 극히 용이하므로 여성들의 직장진출에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다. 직장이란 개념은 일주일에 두세번 있는 본사 사무실에서의 오프라인미팅으로 대체되고 근무장소 이동이 필요하면 다른 곳에 있는 「사무방」에 가서 자리배정을 받으면 된다. 이에 따라 도심지에 위치한 사무실은 점진적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그 자리는 사교를 위한 고급카페, 식당가로 변모할 것이다.
사이버티즌에게 남녀 관계의 개념은 지금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적인 교류상대는 사이버공간에서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일상적인 근무 시간이나 휴식시간에도 사이버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골라 커뮤니케이션하는 짝짓기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난다. 남의 눈치를 보는 불륜의 오프라인 데이트가 아니더라도 「적당한 수준」의 사이버데이트를 즐기는 채널은 얼마든지 열릴 것이다.
마음에 안들면 즉시 바꿀 수 있고 유난히 부담없는 사이버애인의 출현은 가장 친밀한 대화상대인 배우자의 독점적인 위치를 흔들고 남녀간 사랑과 우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기반의 경제활동은 빈부 차이가 지금보다 극심한 20 대 80 사회라는 반갑지 않은 얼굴로 상당수 사이버티즌을 짓누를 것이다.
광속으로 넘나드는 정보를 기반으로 경제생산성은 극도로 높아지지만 그 성장의 과실은 이른바 사이버상류층이 독식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요불급한 직업에 종사하며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생활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경제적 관점으로 사이버티즌 사회를 좀더 세분한다면 인터넷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해 유유자적하게 인생을 즐기는 지식귀족층, 하루의 대부분을 네트워크에 파묻혀 일하면서 귀족층 진입을 꿈꾸는 지식노동자층, 적당한 육체노동으로 기본적인 생활에는 별무리가 없으나 사회적으로 폼나게 살 만한 기회가 결여된 지식무산계층 등으로 나뉠 것이다.
현재 직장에서 몸으로 때우는 서비스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인터넷에 의한 경제구조 변환에 따라 실직 위기에 처할 것이다. 물론 정부는 각종 재취업 정보화교육을 통해 실직자를 위한 여러가지 해법을 제공하겠지만 이들이 정보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사회적인 계층의 장벽을 넘어 「성공시대」를 이룰 가능성은 점차 낮아질 것이다.
사이버티즌에게 교육이란 지식이 필요할 때마다 온라인상에서 수시로 불러오는 맞춤형서비스로 변모한다.
찾아가는 학교가 아니라 수시로 교사와 텍스트를 불러오는 학교과정이 보편적으로 퍼지면 교육시장에서도 학생들의 영향력이 높아진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때 필요한 정보가 알기 쉽게 전달되기를 요구하는 「스튜던트 파워」는 한때 드높았던 교사의 권위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도 휴먼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여전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기반의 고급 교육기관들은 나름대로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다.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 출세를 좌우하는 사회환경은 사교육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이버티즌 부모들은 엄청난 비용에도 불구하고 어린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천재 교육과정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좀더 나아가 키보드로 인해 필기능력이 결여된 아동들을 위한 필체교정학원이나 비만아 예방을 위한 신체놀이학원이 인기를 끌지도 모른다. 한국적인 입시지옥을 배경으로 융성해온 대입학원 업계는 상당부분 더욱 세분화된 사이버교육과정으로 대체될 것이다.
사이버티즌은 역사상 어느 세대보다도 신체관리에 신경을 쓸 가능성이 높다.
손가락으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고 정기적인 출퇴근의 필요성이 대폭 낮아진 근무환경속에서 일반적인 사이버티즌은 점점 더욱 풍만해지는 몸매에 저항해 뱃살과의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단적인 예로 휴대폰의 보급은 공중전화를 찾아가는 운동량을 줄이고 전자결재는 직장상사의 도장을 받기 위해 다른 층을 오가지 않도록 만든다. 아무리 편리한 정보기술이 등장해 육체노동을 줄여준다 해도 인간은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건강을 유지하는 생명체다.
육제적으로 편리해진 근무환경의 대가로 21세기의 사이버티즌은 근무시간 이후에 뭔가에 쫓기듯이 스포츠클럽으로 향하게 된다.
또 다이어트식품, 건강관리 웹서비스 등이 인기를 끌고 과격한 즐거움과 칼로리 소모를 요구하는 신종 스포츠가 등장해 젊은이들을 매혹시킬 것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