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외국 벤더들에 바란다

하용호 진두네트워크 사장

 국경 없는 글로벌 경제 시대의 새 천년을 맞았다. 국내에 글로벌화를 가속화하는 네트워크 시장이 형성된 지 10여년이 지났고 수Mbps를 넘는 고속 데이터 전송의 묘미를 즐기게 된 지도 벌써 수년째다.

 그렇지만 우리가 투자한 데이터 전송 장비의 90% 이상이 외산이다. 네트워크 시장 초기에 국내 대기업을 포함해 너나 할 것 없이 외산 장비 공급권 확보에 혈안이 돼 있었고 독점 공급권은 상당한 이익을 보장했다.

 그러다보니 많은 재원이 드는 국산 장비 개발이나 SW 개발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겨우 간단한 장비 정도를 국산화하는 실정이다.

 가격과 성능에서 월등한 제품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경비 절감과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이미 상당기간 국내 네트워크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 벤더들의 영업 방식에 몇 가지 아쉬운 당부의 말씀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처음에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의 약속과 마음가짐이 이제는 변해 버리지 않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초기 시장 진입시 안정된 시장 확보를 위해 가격이나 기술지원 측면에서 고객이 미안할 정도로 과잉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제는 변변한 기술자 하나 없이 혹은 정확한 기술이전도 하지 않은 채 마냥 제품홍보나 판매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주요 기간망, 즉 금융·국방·교육·행정 등의 데이터 전송에 사용되는 장비의 대부분을 공급했다면 이들 주요망들의 중요성과 안정적 운용에도 책임을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둘째, 우리 나라의 문화와 정서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비상지원 인력도 대기시키지 않고 본사의 국가 기념일, 회계 마감일 등을 이유로 사무실을 통째로 비우는 행태는 기업의 고유 권한도 아니고 세계화 문화에도 역행한다. 기술지원이나 장애처리는 실력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고객이 필요한 바로 그 시점에 얼마만큼 빨리 대처해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셋째, 대부분 외국 벤더들은 국내에 수십개의 대리점망을 구축하고 이들을 통해 제품을 공급한다. 외국 벤더들은 이들 대리점을 운영할 때 제품 공급가와 적기 공급을 가장 큰 당근과 채찍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너개 대리점에서 수십개로 확장해 왔고 이런 와중에 기술자 한 사람 없이 큰 창고 하나만으로 많은 매출을 달성하는 대리점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 벤더들은 기술지원 인력이나 조직이 없는 국내 업체에는 제품 공급권을 부여해서는 안 되고 만약에 이들이 기술지원이나 각종 자료 제공 능력이 없다면 이들을 대신해서라도 모든 기술적 지원을 직접 해야 할 것이다.

 국내의 데이터 통신망과 인터넷망은 세계에서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확장돼 왔다. 하루의 상당 부분을 이들 망에 의존해서 생활하는 만큼 향후 의존도는 더욱 더 커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우리의 망이 커지고 우리의 생활이 변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우리 나라의 제품 구매량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사용자이자 구매자로서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도 한 번쯤 되짚어 봐야 할 것이며 이는 우리의 주요 네트워크를 스스로 존중해가는 첫걸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