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정문식 이레전자산업 사장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문구다.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 바로 정문식 이레전자산업 사장(37)이다.

 그는 젊은날 남다른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 경험을 갖고 있다. 10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기울어진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기 위해 초등학교때부터 청계천 부품가게에서 잔심부름을 하곤 했다. 최종 학력은 고졸. 여건이 그에게 공부를 계속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 사장은 이같은 절망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기초를 다졌다. 공부가 아니라 사업에서 성공해보자는 것이 바로 그것. 그가 이레전자를 설립한 것은 지난 90년 1월. 친구에게 빌린 100만원을 밑천 삼아 허름한 차고에서 하네스 임가공 사업을 시작했다.

 맨손으로 벌인 사업이라 몇번씩이나 자살을 결심할 만큼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히브리어로 「예정되어 있다」는 뜻의 이레라는 사명을 통해 새로운 도전의식을 길렀다고 한다.

 결국 그는 성공했다. 가내수공업 형태로 시작된 이레전자는 설립 10년째를 맞는 올해에 초소형전화기·핸즈프리·충전기 등을 생산하는 매출액 200억원대의 통신장비 중견기업으로 훌쩍 성장했다.

 정 사장은 앞으로 이레전자를 멀티미디어 전문기업으로도 확고히 자리매김시킬 작정이다. 이를 위해 올해초 세계최초로 실시간 16채널 멀티플렉서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는 특별한 기술력 없이 마케팅에만 승부를 걸고 있는 여타의 벤처기업가와는 다르다. 연구·개발에 가장 중점을 두고 매출액의 7%를 여기에 투입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 구도에서 중소기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한 것이 벤처열풍인 셈입니다. 하지만 단지 일확천금을 꿈꾸고 창업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지요. 기술력 없이 마케팅 하나만으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언젠가는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정 사장은 아직도 전세살이를 하고 있지만 사원 자녀들의 교육비를 위해 사재를 털어 장학금을 마련하고 현재도 12시를 넘어 귀가한다.

정혁준기자 jun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