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은 산업의 패러다임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원년이다. 올해는 산전·부품업계에 있어서 중요한 한해가 될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올 한해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21세기의 기업생존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산전·부품업체들을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들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업전략을 마련하느라 무척 바쁘다. 산전·부품업체들의 사령탑을 만나 준비하고 있는 비전들을 들어봤다.
편집자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대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이윤우 대표(54)는 육척거구다. 180㎝가 넘는 장신이어서 경영자가 안됐으면 아마 장군감으로 잘 어울릴 듯싶다. 옛날 어른들이 인물을 평가하면서 이야기한 「신(身)·언(言)·서(書)·판(判)」 중에서 신에 꼭 들어맞는다. 우람한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이 대표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이 대표는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릴 만한데도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에 찬 표정이다. 『키가 커서 어떤 모임같은 데서 찍은 사진속에서 항상 잘 보인다』면서 소탈한 웃음을 짓는 이 대표에게는 올 한해가 그 어느 해보다 버거울 것 같다.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이 「빅4」체제로 바뀌면서 강력해진 도전자들을 물리쳐야 하는 부담이 커진데다 개인적으로 4월에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반도체협의회(WSC) 의장을 맡게 돼 빠듯한 일정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올 한해 반도체시장을 어떻게 보는가.
▲전반적으로 밝다. 반도체나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모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호조를 보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반도체의 공급과잉 가능성은 없는가.
▲D램 반도체의 경우 그동안 업체가 난립해 가격경쟁을 벌여왔다. 한국에서는 2개사 정도만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그렇게 됐다. D램 생산이 늘어난다 해도 올해 디지털화, 네트워크화에 따른 수요증가와 지난 2, 3년동안의 불황에 따른 투자부족으로 공급부족 현상은 당분간 오래 갈 것으로 본다. 특히 초미세공정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고급 D램시장에서는 공급부족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반도체 가격이 요즘 떨어지고 있던데.
▲지난해 말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했다. 반도체 가격은 매년 20∼30% 정도의 폭을 두고 상승과 하락을 되풀이하지 않는가. 예년에 비하면 하락세가 둔한 편이다.
-지난해 사상 유례없는 수익을 올렸다. 올해도 기대할 만한가.
▲지난해만큼의 수익성은 거둘 수 없지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15% 이상의 수익성을 올릴 수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개발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안다. 미국 자회사인 API가 AMD와 활발히 접촉하던데 제휴 계획은 없는가.
▲서로 필요한 칩세트기술을 공유하려는 것일 뿐 생산·공급 차원의 제휴나 공동 자본 투자 같은 계획은 없다. AMD는 원래 독자적인 것을 좋아하는 업체다.
-지난해 말 화성공장을 착공하고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선 것으로 안다. 언제쯤 300㎜ 생산라인을 투자할 생각인지.
▲시간을 조금 더 두려 한다. 반도체업체들은 두가지를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00㎜ 웨이퍼 공장을 짓는 것과 맨 먼저 300㎜ 웨이퍼 공장을 짓는 것이다(웃음). 대만업체들이 300㎜ 웨이퍼사업에 투자하겠다고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만큼 준비된 회사도 없을 것이다. 1년 이상 투자해왔고 장비도 90종 이상을 평가했다. 그래도 우리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300㎜의 상용화 시점은.
▲2001년 말이나 2002년 초로 본다. 올해부터 디바이스도 만들고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곧바로 생산하겠지만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제일 먼저 만들 생각은 없다.
-비메모리사업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비메모리사업은 워낙 다양해 모두 다 할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사업이다. 우리는 PC·TV·전화기·게임기 등 어느 플랫폼에도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IC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CDMA용 칩, 디지털 인코더와 디코더, 디지털TV용 칩세트, LCD 구동IC 정도가 될 것이다.
-요즘 어느 기업에나 인터넷이 새로운 화두다.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인터넷이 활성화하면 시스템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반도체 수요도 급증할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인터넷시장의 활성화보다는 이를 어떻게 경영에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소비자 상대의 인터넷은 곧 기업간(B to B) 전자상거래로 전환될 것이다.
-일본과 대만 등은 정부차원에서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시스템온칩(SOC) 등 차세대 반도체기술에 대한 정부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부에서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할 때다. 국내업체가 세계 D램시장을 장악했다고 정책 지원대상에서 졸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메모리에 치중돼 SOC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다. 산·학·연 협력체제의 구축은 물론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절실하다.
신화수기자 hsshin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