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과 컴퓨터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생활 환경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공상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가정자동화 시스템도 그 중 하나다. 외부에서 전화로 난방을 제어하는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실현됐다. 또 인터넷 및 PC통신 확산에 따른 재택근무도 가능해지고 있다. 이는 모든 일을 네트워크를 통해 처리할 수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그만큼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수 밖에 없고 이에 따른 여유시간을 활용할 여지도 많아지는 것이다.
재택근무나 가정자동화 시스템의 핵심은 홈 네트워크다. 그래서 세계를 연결하는 정보통신 동맥이 인터넷이라면 홈 네트워크는 가정내 모세혈관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부 산업전문가들은 1차 디지털 혁명이 PC와 통신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2차 디지털 혁명은 홈 네트워킹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홈 네트워크는 PC에서부터 TV·디지털 카메라·냉장고 등 모든 가전제품을 무선 또는 유선으로 연결시킨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집 밖에서 냉·난방기기를 작동시키거나 비디오를 켤 수도 있게 된다. TV 한 대로 양방향 멀티통신을 할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홈 네트워크가 가정내 첨단 전자제품을 연결시킨 망이라면 이들 전자기기의 정보를 모으고 분산시키는 중앙통제관 역할을 하는 것은 전화기다. 때문에 차세대 전화기는 인공지능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홈 네트워크를 실현시키는 무선기술은 이미 상당 수준에 와 있다. 일본에선 이들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또 디지털 무선전화 기술을 이용해 각 방에 설치돼 있는 기기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기술, 서로 떨어진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플레이어와 디지털 비디오를 적외선으로 연결해 고품질의 영상까지 보낼 수 있는 무선 기술 등이 곧 선보일 예정으로 있는 등 홈 네트워크의 현실화는 멀지 않았다.
미국 시장조사 컨설팅 업체인 양키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PC보유 가구 중 30.5%가 자신들의 PC와 프린터·TV 등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집중적으로 관리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시장분석기관은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홈 네트워킹 시장은 2000년 10억 달러에서 오는 2002년 20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홈 네트워크 시장의 폭발적인 신장은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를 보유하는 가정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정보가전 업계와 컴퓨터 네트워킹 업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홈 네트워킹 시대에 대비한 준비를 치밀하게 해오고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 기업들은 홈 네트워크의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했다.
홈 네트워킹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디지털 정보가전 제품의 개발과 함께 각각의 정보기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장비, 그리고 이들을 묶어줄 SW 기술이 필요하다.
가전업계는 홈 네트워킹 관련 제품과 기술이 상용화되는 시점을 오는 2005년으로 보고 있으나 제품 개발은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의 주요 가전업체들은 최근 인터넷 기능의 냉장고를 출시하고 인터넷 검색기능을 갖춘 웹 오븐을 개발하는 등 홈 네트워킹 시대에 대비한 제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미 홈 네트워킹의 기본 제품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TV를 양산하고 있으며 인터넷TV와 인터넷 냉장고를 개발하는 등 홈 네트워킹 사업에 전략적으로 접근해 가고 있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냉장고·전자레인지·세탁기 등 기존 백색가전을 디지털화하는 것은 기술상 크게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기존 가전제품을 디지털화하고 또 인터넷 기능을 추가할 경우 제품 단가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남은 과제는 기존 제품을 디지털화하면서도 제품 단가가 비싸지 않도록 상용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가전제품이 눈과 귀, 손과 발의 역할을 한다면 각각의 제품을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 장비와 SW는 신경조직과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가전과 컴퓨터·통신업체들은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성해 나갈 것인가를 놓고 상호협력과 경쟁 관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가전업체와 컴퓨터업체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네트워크 환경 표준을 보편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엔 하나로 통합되거나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호환장치를 마련하는 등 해결책을 찾아 나갈 전망이다.
먼저 홈 네트워킹의 두뇌역할을 하는 제어시스템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IEEE1394를 기본으로 하는 HAVi(Home Audio Video Interoperability) 진영과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컴퓨터 OS를 기반으로 하려는 유니버설 플러그 앤 플레이(Universal Plug and Play) 진영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HAVi를 적용하면 컴퓨터 없이도 TV 예약녹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른 방에 있는 DVD기기나 오디오도 조작해 음악이나 영상을 즐길 수도 있다. 이 기술은 소니·필립스·그룬디히·톰슨 등 8개사가 처음 보급을 주장했고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해 미쓰비시전기·산요전기·선마이크로시스템스(이하 선) 등 15개사가 참여를 표명했다. HAVi 진영은 SW 플랫폼으로 선의 홈 네트워킹 기술인 지니(Jini)를 지지하고 있다.
HAVi와 지니에 대항하고 있는 그룹은 인텔·MS·스리콤·컴팩·미쓰비시 등이 참여하고 있는 진영으로 윈도2000을 OS로 하는 데스크톱PC를 통해 TV·VCR·가정보안 시스템·냉난방장비를 제어할 수 있는 개방형 표준을 지향하고 있다.
디바이스업체들과 PC업체들은 유니버설 플러그 앤 플레이를 지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홈 네트워킹 전송기술 분야에서의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송기술 분야는 유선기술을 기반으로 한 홈PNA(Phoneline Networking Alliance)와 무선기술 기반의 홈RF(Radio Frequency)로 나뉘어져 있다.
홈PNA 진영은 전화선을 통해 1Mbps의 전송속도로 홈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으로 10Mbps 이더넷 기술 또는 56Kbps 모뎀 기술과 결합된 제품출시가 장점이지만 유선을 이용하는 한계때문에 전화포트가 없는 위치에서는 접속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홈PNA 진영에는 우리나라의 삼성을 비롯해 터트시스템·스리콤·AMD·AT&T 와이어리스 서비스·컴팩·HP·IBM 등이 참여하고 있다.
무선기술 기반의 홈RF 진영은 SWAP(Shared Wireless Access Protocol)스펙을 발표했다. 이 기술은 2.4㎓ 대역의 무선을 기반으로 위치에 따른 불편 없이 다양한 기기를 최대 127개까지 연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전송속도가 1Mbps∼2Mbps에 불과하고 접속기기 수가 늘어날수록 전송속도가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다. 홈RF 진영에는 HP·IBM·인텔·MS·모토로라 등이 참여하고 있다.
또 케이블 하나를 통해 가전기기를 제어하는 VESA(Video Electronics Standards Association) 진영에도 많은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VESA 홈 네트워크를 구성해 하나의 선을 통해 기기간 제어가 가능한 기술을 개발중이다. 이 기술은 고선명(HD)TV·세트톱박스 등 차세대 멀티미디어간 음성·영상 데이터 송수신을 실시간 가능하게 하는 IEEE1394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