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제휴
올해 산전·부품업계를 뜨겁게 달굴 변수는 업체간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M&A)이다. 치열한 시장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과의 동침」도 불사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산전·부품업계는 수십년동안 고수해온 「솔로」시대를 뒤안길로 이제 「듀엣」 또는 「트리오」와 같은 「중창」시대에 접어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지난해 반도체 빅딜을 포함해 잇따랐던 몇건의 대형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의 영향이 크다.
현대전자는 LG반도체를 합병해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대형 반도체업체로 거듭났다. 산전업계에서 LG그룹은 전자부품·포스타·정밀 등 3개 계열사를 통합한 LG정밀을 출범시켰으며 LG산전은 LG금속을 합병했다. 미국 듀라셀은 로케트전기·서통의 브랜드와 판권을 인수해 국내 건전지시장을 장악했다. 경쟁사간 전략적 제휴도 지난해 활발했다.
LG전자는 필립스와 TFT LCD 합작사를 설립해 세계시장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삼성전기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기판사업을 위해 미국 얼라이드시그널과 제휴했으며 LG전자 PCB사업부도 미 테세라와 제휴했다.
LG산전은 미 캐리어·오티스와 각각 합작해 캐리어LG·LG오티스엘리베이터를 설립했으며 심텍은 미국 램버스와 램버스D램용 모듈기판사업에 대해 제휴했다.
이러한 경쟁사간 M&A나 전략적 제휴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물론 IMF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적인 산업·기업 구조조정에 떠밀려 이뤄진 것도 많다. 하지만 앞으로는 구조조정 차원이 아니라 시장을 선점하는 공격적인 협력과 제휴가 올해 활발할 것으로 관측된다.
디지털산업시대의 도래로 국내업체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세계 어느 기업과도 동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글로벌 경쟁체제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체제에서는 소수의 선두업체만이 살아남는다. 1위 업체는 시장 장악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2위와 3위 업체들은 선두업체군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경쟁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는 지난해 말 한·미·일·독 주요 반도체업체들로 이뤄진 차세대 반도체 컨소시엄 구성.
여기에 끼지 못해 시장퇴출의 위기에 놓인 마이너 반도체업체들은 같은 수준의 업체끼리 제휴하거나 메이저업체와의 협력을 본격 추진할 전망이다. 일부 일본과 대만업체들이 최근 D램 반도체와 TFT LCD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반도체업계를 휩싼 합종연횡의 바람은 곧 일반 부품·산전업계에도 밀려들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변화를 감지한 일부 산업·부품업체들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 대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국내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외국업체와 좁은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로 진출하려는 국내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휴 움직임은 올해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며 덩달아 국내업계 구도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또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경쟁사간의 제휴와 같은 「사건」이 올해안에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외국업체의 세계시장 장악력이 높은 분야에서 이러한 가능성이 높다.
몇몇 대형업체가 외국 또는 국내업체와 제휴할 경우 그동안 특정업체에만 부품을 공급해온 중소 부품업체들도 올한해 명암이 엇갈릴 전망이다.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마이너로 전락하는 업체에 납품해온 부품업체들은 덩달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판로에 기대 영업해온 중소 부품업체들도 다양한 판로개척과 아울러 협력선의 움직임에도 촉각을 한층 곤두세워야 할 판이다.
신화수기자 hsshin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