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산업전자.부품 시장 10대 변수 (8)

계약제조자(CM)

 CM이라는 제조방식의 등장이 국내 전자부품업계의 사업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계약제조자(Contract Manufacturer)라 불리는 CM은 대규모 생산라인을 구축했으면서도 독자상품을 갖지 않고 오로지 다른 회사의 제품만을 제조하는 일종의 순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업체를 지칭하는 표현.

 최근들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우후죽순격으로 늘고 있는 CM은 보통 가변생산시스템(FMS)으로 구축된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추고서 계약자가 주문한 완제품을 대량 생산, 전세계적으로 공급한다. 이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들의 제품생산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CM은 미국에서조차 생소한 개념의 제조방식이었다. 시장 지배력이 크고 브랜드 이미지가 높은 미국의 유명 컴퓨터·정보통신·반도체업체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은 직접 생산하고 일부 저가 모델의 경우 아시아·동구·멕시코 등지의 업체로부터 OEM방식으로 제품을 공급받아 자사 상표를 부착, 판매했다.

 그러나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규모 생산라인을 운영하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사업다각화를 통한 기업변신에 걸림돌로 작용하자 외국 대형 제조업체들은 점차 생산라인을 축소하는 조직 슬림화작업을 추진했다. 대신 제조전문업체에 자사 제품의 생산을 위탁하는 아웃소싱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특히 기업 인수·합병(M &A)이 가속화되면서 외국 대형 브랜드업체들의 제조 부문 아웃소싱은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즉 대형 브랜드업체들은 연구개발·마케팅에 주력하고 제조기능은 전적으로 외부에 맡기는 것. 현재 미국에서는 CM업체들이 잇따라 출현, 성업을 누리고 있다.

 이들 CM업체들은 단순히 대형 브랜드업체가 주문하는 제품을 수탁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생산에 필요한 각종 원부자재의 수배·조달기능까지 위탁받고 있다.

 따라서 이들 CM업체들이 매년 구매하는 전자부품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조만간 대형 브랜드업체의 직접구매 물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들 CM업체들이 전세계 전자부품시장 질서를 좌우할 주력업체로 대두될 것이라는 점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CM업체들이 세계 전자부품시장의 새로운 세력으로 급부상하자 그동안 독자 브랜드를 갖춘 세트업체를 대상으로 제품을 공급해온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은 이들 신흥세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들 CM업체의 구매물량이 워낙 큰 데다 앞으로 구매물량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설명하면서 『국내 전자부품업체들도 이들 CM업체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자부품 공급선이 세트업체에서 CM업체로 전환되는 추세에 대응, 그동안 세트업체만을 상대로 제품공급 협상을 벌여온 국내 주요 전자부품업체들은 전담팀을 구성, CM업체 탐색에 본격 나섰다.

 인쇄회로기판(PCB)업체의 수출담당 임원은 『CM은 단순조립을 통해 이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재량권을 가진 부품구매 부서는 비용절감에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특히 이들 CM의 부품구매담당 임원은 구매부문 베테랑들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CM업체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가격 싸고 품질 좋은 제품만을 구매하기 위해 전세계적인 구매시스템을 운영할 정도로 해당품목의 동향을 꿰뚫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그러나 이들 CM은 단기적인 스폿계약보다는 장기계약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번 거래가 형성되면 다년간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전자부품업체에는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희영기자 hylee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