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유색인종 세상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01번 도로를 타면 남쪽으로 접어들자마자 길 양쪽으로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얼핏보면 창고인지 공장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곳이 바로 실리콘밸리 주력단지다.

 실리콘밸리.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적수공권으로 일확천금을 이룰 수 있는 현대판 마이더스다.

 이곳은 현재 미국 벤처자본의 40%가 몰려 있으며 하이테크분야 세계 100대 기업 중 20여개사가 모여있는 「꿈의 구장」이다.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는 기술과 비즈니스의 혁신지인 이곳에 인터넷 붐을 타고 유색인종(주로 아시아와 히스패닉계)이 대거 몰려와 이들 인구가 처음으로 백인을 추월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신문은 이 같은 사실이 시민단체와 실리콘밸리 기업이 공동 참여해 만든 「조인트 벤처 실리콘밸리(Joint Venture Silicon Valley)」의 연례 보고서에서 밝혀졌다고 전하며 작년에 실리콘밸리의 주요 거주지역인 산마테오(San Mateo)와 샌타클래라(Santa Clara) 두 곳 주민 중 자신을 백인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49%에 불과해 처음으로 유색인종이 백인보다 많아졌다고 보도했다.

 취학대상 인구 백인 비율은 이보다 더 낮았는데 산마테오와 샌타클래라 지역의 취학인구 비율은 백인 39%, 히스패닉 31%, 아시아·태평양 출신 26%, 아프리카 출신 4%로 나타나 절반에 훨씬 못 미쳤다.

 이 보고서 작성의 자문을 맡았던 스탠퍼드대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애나리 색서니언은 『이번 조사는 숙련기술자와 기업가적 자질을 갖춘 사람들의 이민이 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라며 『이들 이민자들은 대부분 본국과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서니언은 또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에 살고 싶어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94년 이후 이곳의 사회, 경제 환경을 평가하기 위해 매년 발표되는 조인트 벤처지수를 보면 실리콘밸리의 경제 붐이 지속되고 있는 반면 고용 증가는 작년에 비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작년 창업투자자본이 90%나 늘어나 61억달러에 달했지만 새로 늘어난 일자리는 겨우 1.7% 증가한 2만1200개에 그쳤다.

 이 수치는 97년 5.2%의 창업투자자본 증가로 6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것에 비하면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믹스의 더글러스 헨톤 사장은 『이 같은 고용증가의 둔화현상은 전자, 반도체, 컴퓨터, 군수 등 기존 제조업 분야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하드웨어는 사양화되고 소프트웨어는 힘을 얻는 구조 조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실리콘밸리에 있는 소프트웨어 업체의 평균 직원수가 수천명을 고용하는 반도체회사에 비해 훨씬 적은 27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지역의 빈부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데 한창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평균 연봉은 지난 98년 9만5800달러인데 반해 이 곳에서 가장 높은 고용효과를 보이고 있는 소매 및 요식업 등을 포함한 지역관광 서비스 분야의 평균 연봉은 2만2000달러에 불과했다.

 게다가 샌타클래라 지역의 상위 20% 계층의 연 실질가계소득은 96년 4만달러에서 98년 12만달러로 급증했지만 하위 20% 계층의 98년 소득은 3만6700달러에 머물러 90년대 초반의 소득수준을 밑돌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소득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의 경제상황은 미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나은 것으로 밝혀졌다.

 즉 90년대에 샌타클래라 지역의 1인당 실질소득은 32% 늘어나 미국 전체의 증가율 13%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