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 주노명 베이커리

 늘 똑같은 일상사에 지쳐갈 무렵, 갑자기 가슴 한쪽을 아릿하게 만드는 낯선 바람이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자친구가 생기니 기분이 좋아져 남편한테 더 잘하게 되더라」는 어느 유부녀의 고백을 떠올리게 할 만큼 「주노명 베이커리」는 중년부부의 바람을 상큼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구미호」와 「진짜 사나이」 등을 만들었던 박헌수 감독이 갖는 관객과의 영화적 소통은 오히려 이러한 로맨틱 코미디에서 더 빛을 발하는 듯 보인다. 사랑과 불륜을 너무 낭만적이고 동화적으로 그렸다는 현실적인 비판이 앞서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랑의 팬터지를 꿈꾸듯 불륜의 팬터지를 꿈꾸는 「즐거운 긴장감」을 갖게 한다.

 사랑이 늘 즐거운 일이 아니듯 불륜이 꼭 불쾌할 이유만은 없다. 물론 「왜」라는 물음표에 설명할 수 없는 덜거덕거림이 이 새로운 사랑의 공감대를 방해하지만, 영화는 사랑을 소유와 집착이 아니라 이해와 화해의 시각에서 다룸으로써 그 고비를 넘겨간다.

 사랑하는 아내 정희와 예쁜 딸을 둔 주노명은 남부러울 게 없는 행복한 가장이다. 번듯한 아파트에 살며 빵집을 운영하는 「착한 남편」인 그는 불현듯 찾아든 아내의 한숨소리에 고민을 한다. 정희의 한숨을 잠재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아내의 한숨은 점점 더 길고 깊은 공명이 되어 그를 괴롭힌다.

 그러던 어느날 주노명은 아내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피어나고 그 원인이 빵집을 드나드는 3류 소설가 박무석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노명은 박무석의 뒤를 캐다 그가 몇년 동안 변변한 소설 한권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무능력한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보험외판원 해숙에게 꼼짝없이 쥐어 사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내의 웃음을 위해 주노명은 박무석에 대해 묵인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박무석에겐 해숙으로부터 「빵집 금족령」이 내려진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정희의 한숨. 주노명은 아내를 위해 해숙을 만나 박무석의 빵집 출입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주노명 역시 해숙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에서 보이는 주노명의 불륜은 정희의 그것보다 좀 더 「적극적인 열병」이다.

 반죽을 하고 알맞게 구워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제빵의 기술을 사랑의 기술과 버무려 구워낸 감독의 솜씨는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권태로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를 살짝 뛰어넘는 재치를 선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네명의 주인공은 캐릭터를 강조하듯 과장된 연기를 선보이고, 허둥대며 사랑의 매듭을 풀어가는데, 그것이 관객들에겐 마치 한편의 개그를 보듯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상투적인 유머지만 그것에 덧입혀진 대사의 감각적인 재치와 순발력 역시 오랜만에 다시 U턴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즐거움을 준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