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전문업체인 심텍은 지난해 외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본 제휴에 앞서 실사차 나온 미국 투자회사 관계자들이 포크레인을 대동하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회사의 재무 관련 장부를 보기에 앞서 심텍의 청주공장 밑바닥을 파헤치고 오염물질 배출여부를 검사했다는 것.
이유인즉 미국내 반도체 대기업과 거래를 지속적으로 하려면 환경 오염 방지에 대한 완벽한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장 구석 구석을 이 잡듯이 살펴본 연후 별다른 흠을 발견하지 못하자 이들은 안심하고 지분 참여에 흔쾌히 동의했다.
충남의 한 전자부품업체는 최근 미국의 전자업체와 대규모 수출 계약 일보 직전에서 분루를 삼켰다. 품질·가격·납기 등 모든 조건이 좋으나 국제환경경영인증(ISO14000)을 취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래할 수 없다는 게 미국측 바이어의 설명이었다.
이처럼 이제 「환경」은 국내 전자부품업계가 당변한 최대 현안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변수를 고려치 않은 경영 구상은 있을 수 없으며 환경을 도외시한 사업 전략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환경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친화형 작업조건을 구축하고 환경친화형 제품을 생산해야만 새로운 밀레니엄 국제 무역질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 수출선인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은 날이 갈수록 환경 규제 수준을 높이는데다 「환경문제」를 내세워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까지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오는 2004년 1월 1일부터 납(Lead)을 함유하거나 이를 이용하여 제조된 전자부품들의 역내 반입을 금지키로 했으며 미국과 일본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올 상반기부터 할로겐존 화합물이 첨가된 PCB의 유럽 수출이 규제를 받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PCB는 물론 이 PCB가 장착된 전자제품의 유럽 수출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미 일부 유럽 전자업체들은 VCR 및 휴대형 카세트·자동차제어용 PCB의 경우 할로겐족이 포함되지 않은 그린 PCB를 탑재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국내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세계 PCB시장을 석권한 일본의 경우 일본CMK· 마쓰시타·이비덴·도시바·JVC 등 유력 PCB업체들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그린 PCB를 개발, 세트업체에 공급하고 있다』면서 『국내 전자업체와 PCB업체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 칩화 경향이 갈수록 심화되는 콘덴서·저항기·트랜스포머 등에 적용되는 각종 도금재료도 비슷한 환경규제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환경의 무풍지대에 놓여 있던 수많은 전자부품들이 「환경」이란 규제를 받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환경문제는 비단 수출용 전자제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내수 중심의 전자부품 사업에서도 환경은 주요한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일례로 정부는 3월부터 전자제품 및 부품 생산라인의 필수 공정인 납땜 공정에서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의 배출을 엄격히 규제할 계획이다.
전자부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세계 전자제품 교역질서는 제품의 가격 및 성능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과 더불어 인류의 안전에 바탕을 둔 환경친화성이 중심축을 이룰 것』이라고 지적하고 『국내 전자부품업체들도 그린 제품의 개발과 생산라인 구축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