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PC는 가까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또 어떤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을까.
컴퓨터업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함께 사용자들이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네트워크 컴퓨터(NC)나 초간편 PC(SIPC)는 바로 사용하기 간편한 PC를 통해 원하는 수요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컴퓨터업계의 노력에서 나타난 결과물이다.
PC를 TV나 오디오,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일반 가전용품처럼 값싸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컴퓨터업체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PC의 발전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인텔이 제시한 레거시 프리 PC다.
세계 PC시장을 주도하는 미 인텔은 98년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easy of PC)를 구현하기 위한 PC의 아키텍처로 「레거시 프리」를 제안해 주목을 끌었다. 인텔은 아즈텍(Aztec)이라고 이름붙인 이른바 레거시 프리 개념으로 설계한 PC를 선보이기도 했다.
레거시(legacy)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나 유물을 뜻한다. 따라서 레거시 프리(legacy free)라는 말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다 아니면 과거의 유산을 없앤다는 것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레거시 프리는 81년 PC가 처음 발표된 이후 PC가 계속 이어온 아키텍처를 레거시로 파악하고 이같은 과거의 아키텍처를 제거한다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물론 PC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마이크로프로세서(CPU)를 공급하는 인텔이 레거시 프리 PC를 제안한 것은 인텔의 사업전략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용하기 간편한 PC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초부터 공동연구에 착수했으며 인텔은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PC제조업체들에 사용하기 쉬운 PC를 제작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레거시 프리 PC는 일단 사용하기 쉬운 PC라는 개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한 사용하기 쉬운 PC 이른바 「easy of PC」는 크게 3가지 기술로 요약할 수 있다.
세트업하기 쉬운 PC, 확장하기 쉬운 PC, 그리고 사용하기 간편하게 디자인된 PC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인텔이 IAPC(Instantly Available PC), 마이크로소프트가 온나우(On Now)PC라는 용어로 규정한 세트업하기 쉬운 PC는 사용자들이 PC를 구입해 전원만 꽂으면 곧바로 PC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실제 인텔이 자체 조사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PC를 구입한 소비자들 중 70%가 PC를 구입해 사용할 때까지 걸리는 설치시간이 평균 2시간 이상이라는 것. 따라서 설치시간을 30분이내로 줄여 TV 등 일반가전제품과 마찬가지로 포장박스를 해체해 전원만 연결하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out of experience) PC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용하기 쉬운 PC의 또 하나의 핵심은 PC를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PC에서 구현되는 유니버설시리얼버스(USB : Universal Serial Bus)인터페이스가 바로 이같은 개념에서 나타난 기술이다. USB인터페이스는 인텔·마이크로소프트·컴팩 등이 합의한 차세대 PC 주변기기 규격으로 초당 12MB의 데이터 전송속도를 제공하며 플러그 앤드 플레이를 지원하는 인터페이스다.
PC에 USB인터페이스를 적용함으로써 디지털이미징처리나 사진, 영상회의 등 새로운 기술들을 손쉽게 PC에 연결함으로써 PC의 활용도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USB인터페이스의 등장은 컴퓨터 사용자와 주변기기 공급업체 모두에게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스카시와 패럴렐, PCMCIA 등 인터페이스별로 주변기기를 구매해야 하는 낭비 없이 하나의 장치를 여러 형태의 컴퓨터에서 공유해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설치가 쉽고 다수의 주변기기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소비자들의 USB 주변기기 선호 추세에 한몫을 하고 있다. 스카시 인터페이스가 최대 14개의 주변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 데 반해 USB 규격은 127개의 주변기기를 연결할 수 있고 PC를 재부팅하는 과정 없이 바로 연결해 사용하는 등 사용의 편리성이 대폭 개선된 장점을 갖고 있다.
주변기기 공급업체 입장에서는 하나의 제품에 서너가지 방식의 인터페이스를 장착해야 하는 중복투자가 필요없고 생산라인을 단일화함으로써 제조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사용하기 쉬운 PC를 구현하기 위한 마지막 기술로 PC제조업체들이 인체공학적으로 PC를 설계할 수 있도록 폼팩터(form factor)를 바꾸는 것이다. 즉 기능과 성능을 강화하고 사용자들이 간편하고 사용하기 쉽게 PC를 설계할 수 있도록 폼팩터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레거시 프리다.
폼팩터를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현재는 불필요한 과거의 기능을 제거해 사용자들이 사용하기 쉽도록 자유로운 디자인의 PC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서 기존 PC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이었던 ISA슬롯과 ISA디바이스와 같은 레거시를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레거시를 제거함으로써 PC 자체의 설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ISA슬롯을 시작으로 USB가 대체할 수 있는 PCI시리얼과 패럴렐포트, IEEE1394인터페이스가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IDE, FDD와 VGA슬롯 등이 대표적인 레거시다.
이처럼 사용하기 쉬운 PC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은 폼팩터의 소형화와 함께 모뎀이나 사운드카드, 그래픽카드 등이 모두 주기판에 장착됨으로써 PC의 모습은 더욱 단순화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래의 PC는 얇은 PCB 패널에 CPU와 메모리 정도만 장착하고, 그밖의 모든 장치는 주기판에 내장할 수 있게 된다. 마우스와 키보드, 조이스틱, 프린터 등의 외부 주변장치들은 모두 별도의 USB허브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PC에는 한개의 포트만 연결하면 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대용량 저장장치인 CDRW 정도만 외부로 노출될 뿐 모든 장치는 한장의 보드에 들어갈 수 있어 결국 TV와 별 차이 없는 모습을 띌 전망이다.
결국 레거시 프리는 정보화시대에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한 PC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서도 일반 가전제품처럼 손쉽게 설치하고 사용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윤상한 인텔코리아 이사는 『앞으로 레거시 프리 개념을 도입한 PC는 기존의 데스크톱 형태에서 크게 달라져 인텔이 이미 올해 초 선보였던 아즈텍처럼 피라미드 모양이 될 수도 있고 모니터 일체형의 TV 모양, 오디오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도 될 수 있는 등 기능은 PC지만 모양은 기존 PC와는 커다란 차이가 날 것』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무선기술이나 음성인식기술, 자연어처리기술 등을 PC에서 구현함으로써 사용자들이 더욱 손쉽게 PC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이같은 기술이 PC에서 구현된다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올라가 사용하기 쉬운 PC의 개발로 PC보급을 확대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만큼 레거시 프리라는 개념을 토대로 키보드나 마우스 없이도 무선이나 말로 작동하는 PC가 출현함으로써 21세기를 말 그대로 컴맹 없는 시대로 만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양승욱기자 swyang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