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망사업 추진
행정전산망·금융전산망·교육연구전산망·국방전산망·공안전산망 등 5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을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계획이 추진된 것은 5공화국 초기인 1983년부터다. 그러나 사업 추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1986년 12월 31일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시행령」이 국회를 통과하면서였다.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은 컴퓨터 수요의 창출, 체계적인 정보산업 육성정책의 필요성,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정부구현이라는 시대적 요구 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추진된 것이었다. 또한 규모의 방대함에 있어서도 건국이래 최대의 국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 사업은 계획의 입안 과정에 참여했던 극소수의 관계자들만이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만큼 사업 자체에 도박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또 여러 관련 부처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는 등 사업 초기부터 극복해야 할 무리수나 난제가 도처에 하나 둘이 아니었다.
체신부가 기초해서 당시 여당인 민정당 안으로 국회에 제출됐던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제정 목적은 전산망(통신망)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균형발전을 통해 정보산업을 육성하고 정보사회를 실현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전기통신공사와 같은 전기통신사업자의 전산망사업 참여, 전산망 소요 기기와 기술의 국산화 등이 주요 목표였다. 여기에는 또한 기술 호환성 확보를 위한 표준화사업의 추진과 전문인력 양성 등의 목표도 포함돼 있어 이 법률은 사실상 국가 차원의 정보산업 육성 계획의 실천방안이나 다름없었다.
법률의 제정에 앞서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에 대한 지침이 처음 마련된 것은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가 1985년 5월 청와대에 보고한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정전산망 추진계획(안)」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안에는 각 전산망에 대한 망별 사업목표와 중점 추진사항, 추진전담기관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행정전산망의 경우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통신·운영 등 부문별로 소요되는 예산 추정액이 나름대로 구체성을 띠었고 전산화에 따른 예산절감효과도 분석돼 있었다.
그러나 정부 공식 문건에서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계획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1983년 12월 대통령직속의 정보산업육성위원회가 보고한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안)」에서였다. 각계 200여 기관 및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작성된 이 계획안은 5대 국가기간전산망을 구성, 운영하는 목적에 대해 「국가 전체의 투자대비 효과를 최대화하고 국내 정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의 목표가 계획의 초기단계부터 정보산업 육성의 필요성에서 출발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안)」은 6개월 뒤 「국가기간전산망 계획 추진보고」라는 문건으로 구체화됐다. 5대 기간망의 범위가 행정전산망·금융전산망·교육연구전산망·국방전산망·공안전산망으로 최종 압축된 것은 이 보고서에서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또한 청와대가 5대 망 사업 추진을 직접 관장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를 위해 만든 기구가 바로 1984년 출범한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다. 위원장은 대통령비서실장이었고 각 위원은 총무처·상공부·체신부·과기처 등 소관부처 차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정무2수석, 교문수석 등이었다.
앞서 소개한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정전산망 추진계획(안)」은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가 만든 첫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이 계획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보고서 명칭에서도 나타나듯 행정전산망에 대한 비중과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이었다. 5대 망에 대해 각각의 비중을 동등하게 다뤘던 이전 문건들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행정전산망에 소요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통신망에 대한 규격표준화와 기술 국산화가 정보산업 발전에 미치게 될 파급효과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또한 행정전산망에서의 경험은 나머지 4개 망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한다고 못을 박아 놓고 있었다.
전산망조정위원회가 이 계획안에서 명시한 행정전산망 사업 추진에 소요될 자금 규모는 일부 사업이 시작된 86년부터 사업이 마무리되는 95년까지 10년간 모두 7607억원이었다. 여기에는 주전산기 283대와 일선 관청에 투입할 다기능사무기기(16비트 PC) 2만7924대의 구입비용, 컴퓨터 전문인력 2830명의 인건비 등도 포함돼 있었다.
행정전산망에 대한 일련의 보고서나 계획안은 그렇지 않아도 당시 정보산업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기업 관계자들은 보고서의 자구 하나하나에 의미를 달리할 만큼 신경을 쓰던 터였다. 정부는 정보산업 육성을 위해 행정전산망과 관련해 가능한 모든 부분에 대해 민간업체 참여를 개방할 방침이었다. 당시 예산규모나 정보산업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소요자금 7607억원은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행정전산망사업의 부처별 책임자는 각 부처의 차관으로 정해졌고 총괄부처는 총무처, 전체 설계와 기술지원 전담기관은 한국데이타통신(현 데이콤)이 각각 맡도록 했다. 계획안의 백미는 역시 행정전산망 사업에 참여하는 관련 부처가 많고 업무내용이 다양해 종합적인 조정통제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해 놓은 부분이었다. 요지는 당분간 이 조정통제기능을 대통령 직속의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가 맡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이런 내용들을 보다 구체화시킨 것이 1987년 2월에 완성된 최종판 「행정전산망 종합계획(안)」이었다. 1986년 12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시행령」이 제정되고 난 직후에 작성된 이 종합계획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행정전산망 사업 추진을 위한 자금조달 방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동안 나온 보고서나 계획안들이 자금소요계획만을 명시했을 뿐 조달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못해 사업 자체가 졸속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던 상황이었다. 예컨대 1986년 1월 전산망조정위원회가 발표한 「다기능 사무기기 보급계획(안)」의 경우 1986년 3월부터 1988년 2월까지 2년간 일선 관청에 모두 5185대의 PC를 보급키로 돼 있지만 정작 중요한 자금 소요 계획은 빠져있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이 같은 일정을 진행시키려면 당장 1986년부터 정부예산이 집행되도록 해야 했는데 청와대와 관련부처들은 1985년 정기국회 예산 심의 안에 관련 예산을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실제 PC 보급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어 87년부터 본격적인 보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에서 시스템설계와 소프트웨어개발 책임기관인 한국데이타통신 역시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2년이 지나도록 행정전산망 사업과 관련된 실질적인 업무는 단 한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무형의 용역사업 분야는 국가예산 집행 대상에서 배제돼 있었고 예산회계법상 모든 예산은 사전심의를 거친 곳에만 집행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따라서 개발결과를 봐야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등 용역사업에는 예산집행을 위한 사전심의나 감리는 어떤 형태로든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렇듯 자금 조달계획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최대 관건이었다. 그런 점에서 「행정전산망 종합계획(안)」에서 제시된 자금조달 방안은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관련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 소요자금은 행정전산망 전담관리기관(한국데이타통신)을 통하여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선투자하고 행정전산망 완성 후 그 사용료 명목으로 정부예산에서 연차적으로 상환함.
2. 행정전산망 소요 컴퓨터시스템의 개발비·구입비·운영비 등에 대한 종합지원이 가능하도록 행정전산망 소요자금지원 전담회사를 한국전기통신공사 자회사로 설립해서 운영함.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자회사를 통해 모든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은 애당초 청와대나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의 기본방침이었다. 한국전기통신공사가 한국데이타통신 등에 직접 투자할 수 없었던 것은 자금투자방식이 나중에 상환받는 금융사업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 정관에는 금융사업을 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86년 11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100% 출자해 출범한 회사가 한국통신진흥주식회사다. 한국통신진흥은 출범식과 함께 당장 1986년 76억원을 비롯해서 1987년에 683억원과 1988년 754억원 등 모두 1513억원의 자금을 한국데이타통신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국가기간전산망의 시범 사업격인 행정전산망 사업 추진에 대한 역사적 물꼬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1986년 12월에는 공기업인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지원한 자금을 집행해주기 위한 사전 감리(심의)기관인 한국전산원이 설립됐다. 국가기간전산망 사업 추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