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특별기획> 밀레니엄 대예측 21 (16);Chip is Products

 디지털시대에서는 더이상 전자제품의 영역을 구분할 필요가 없어진다. 디지털음악을 듣는 이동전화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TV와 같이 기존의 시각으로는 영역을 구분하기 어려운 제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훗날에는 보청기처럼 사람의 귓속에 들어가는 이동전화나 손목시계형의 PC도 등장할지 모른다.

 디지털기술과 반도체기술의 발전으로 여러 칩을 하나의 칩으로 통합하는 반도체기술이 각광받으면서 칩 자체가 제품의 기능을 모두 담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칩 자체가 시스템이나 제품이 되는(Chip is Products)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를 구현하는 반도체기술이 바로 시스템온칩(SOC : System On a Chip)기술이다.

 SOC는 메모리반도체·마이크로프로세서·논리회로와 같이 서로 동떨어진 반도체 칩을 하나의 칩에 담는 기술을 뜻한다. 이 기술의 장점을 꼽자면 끝이 없다.

 가전제품과 컴퓨터 등 각종 전자제품의 회로판 공간을 대폭 줄여 제품의 몸집을 작게 할 수 있다. 칩 사이의 접속이상으로 발생하는 숱한 에러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다. 여러개의 칩을 쓸 때보다 값이 싸지는 것은 물을 필요조차 없다.

 그렇지만 각 제품마다 별도의 전용 칩을 쓰는 상태에서 이러한 제품의 탄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몸집이 커지고 채산성도 떨어져 제조업체들이 이러한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SOC의 등장으로 이러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반도체업체들도 SOC기술을 보유하면 다양한 칩을 만들 때보다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어 이익이다. 한켠에서는 시장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으나 무한에 가까운 신규시장을 창출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복잡한 기능과 단순한 디자인을 동시에 요구하는 멀티미디어시스템 제조 경쟁력은 이제 SOC기술 확보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문제는 이 기술을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기술은 고도의 집적기술과 초미세공정기술을 요구한다. 또 여러 반도체 기능을 더욱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설계기술(IP : Intellectual Property)에 대한 노하우도 필요하다.

 특정업체가 고객이 요구하는 모든 멀티미디어 기능의 회로를 설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난제도 점차 해결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반도체업체들의 기술 경쟁이 가열되면서 이제 0.10미크론(1미크론은 100만분의 1㎜)과 같은 초미세반도체공정기술도 곧 등장할 전망이다. 또 서로 다른 회로 설계 인터페이스를 통일하려는 움직임도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인쇄회로기판(PCB)에 여러 부품을 연결하는 것처럼, 하나의 칩에 여러 기능 회로체계를 마치 레고블록을 조립하는 것과 같은 가상부품(버추얼 컴포넌트) 개념의 설계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국내외 반도체업체와 관련업체들은 새로 개발하는 IP기술을 전세계 단위로 거래할 수 있는 「버추얼 컴포넌트 익스체인지(VCX)」를 설립, 가상부품기술의 확대 보급과 실제 상품화에 적극 나섰다. 여기에는 모토로라·인피니언·노키아·도시바 등 15개 반도체 제조업체와 케이던스·멘토그래픽스 등 반도체 설계업체, 그리고 IP 공급업체들이 이 단체에 참여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는 전자부품연구원을 비롯한 정부 연구기관과 삼성전자·현대전자 등 대기업과 중소 반도체 설계업체들이 핵심 칩 설계용 IP기술을 개발중이다.

 SOC기술은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당장 현실화할 정도로 가시권안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SOC기술이 기술이 앞으로 등장할 각종 멀티미디어시스템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 SOC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업체가 미래 반도체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자 세계 반도체업체들은 사운을 걸다시피하면서 SOC기술 개발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분야의 개발 경쟁에 가장 먼저 뛰어든 업체들은 주문형반도체(ASIC)업체들이다. 업종의 특성상 다양한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SOC의 개발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업체는 LSI로직이다. 이 회사는 「더 시스템 온 어 칩 컴퍼니」를 등록상표로 확보할 정도로 SOC기술의 전도사임을 자임하고 있으며 SOC의 핵심기술을 개발중이다.

 SOC의 중요성이 커지자 메모리반도체업체들도 뒤늦게 개발 경쟁에 가세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는 세계 최고의 공정기술을 앞세워 메모리와 시스템IC 기능을 통합한 복합 칩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SOC의 성패는 가장 앞선 공정에 맞게 설계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면서 『가장 앞선 D램 공정기술을 보유한 국내업체들의 역할도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메모리반도체업체들이 힘들어하는 대목은 디자인 방법론과 IP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미국과 유럽업체에 비해 적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메모리업체들은 국내외 전문 IP업체들과 제휴해 관련 기술 노하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사장은 『한 반도체업체가 공정기술에서 다양한 반도체디자인과 IP기술을 모두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앞선 메모리반도체기술을 바탕으로 국내외 시스템IC업체들과 협력해 SOC 기반기술을 확보중』이라고 말했다.

 웬만한 발전소 건물 크기였던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은 55년 뒤 노트북 컴퓨터나 핸드 헬드 PC 정도로 작아졌다. 이것도 크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자 몸집을 더욱 줄이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본체를 아예 하나의 칩으로 만들 수 없을까』 이러한 화두도 21세기에는 실현될 전망이다. SOC기술의 등장 때문에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칩이 곧 제품이며 제품은 곧 칩이다』라는 명제는 더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신화수기자 hsshin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