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모두가 지식을 말한다.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돈을 많이 벌고 지배자가 되며 강자가 된다고 한다. 나스닥과 코스닥을 이끌어가는 벤처기업들은 모두가 다 지식기업이라고 한다. 기업도 지식경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지식이 돈이 된다니!
지식은 본디 하나님의 것이고 선생님이 그것을 받아와서 제자에게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제자가 선생님에게 지식을 구하고 얻은 후 감사의 사례를 하기는 했지만 결코 그것은 거래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식은 공유되는 것이며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고 제자는 청출어람하여 더 큰 지식의 샘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정보사회는 새로운 지식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지식은 경제적 재화로서 상호간 경쟁적이고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가진 지식은 나만의 것이며 남에게는 돈을 받기 이전에는 넘겨줄 수 없는 것이다.
지식을 경제적 거래의 대상으로 파악할 때 학교는 거대한 지식기업으로 이해된다. 학교는 전통적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기능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기존의 학교들은 이러한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고 대신해서 다른 형태의 지식거래 기관이 생겨나고 있다.
아마도 대표적인 지식거래업소는 통신판매 형태를 취하고 있는 학습지업체와 출판업체, 그리고 인터넷과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전자출판업체다.
사실 그동안도 지식과 관련하여 가장 큰 이윤을 보아온 사람들은 지식을 생산하고 전수하는 선생님들이었다기보다는 지식매체업자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연중 출판물의 70% 가까이를 학생용 참고서가 차지하고 있고, 베스트셀러로 큰 돈을 버는 이도 저자이기보다는 출판사다.
결국 학교나 선생님들은 이러한 매체업체에 간접적으로 고용되고 있는 셈이다. 교과서 정책마저도 출판업체의 상업논리가 교묘하게 작용돼온 것이 현실이다. 정작 지식의 소유권자인 선생님과 작가는 자신의 지식을 알릴 수 있는 매체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브로드캐스팅 혹은 퍼블리케이션은 가난한 선생님이나 작가·화가들로서는 근접하기가 만만치 않은 전달방식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인터넷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지려 하고 있다. 타임워너사와 아메리카온라인의 합병은 매체업계에 새로운 모습의 지배자가 탄생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이래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얘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인류의 소망은 종이와 인쇄술을 발명하였고 새로운 문명을 여는 열쇠가 되어왔다.
이제 새로운 전달매체가 생겼다. 바로 인터넷을 통한 전자출판시대가 열린 것이다. 선생님과 작가, 아니 자신의 얘기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구태여 거대 방송사나 출판사의 도움 없이도 브로드캐스트하고 퍼블리케이트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은 그 속성상 거대 매체업체만의 세상이 아니다. 초등학생도 마음만 먹으면 매체업자와 상대하여 자신의 목소리와 사진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솔직히 지식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대상은 지식을 담은 매체였지 지식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지식은 똑같은 형태로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가 전달하는 지식은 학생 안에서 새롭게 구성되고 창조된다.
시인이 원고지에 적어놓은 구절은 독자에 따라 슬픔의 노래가 되기도 하고 기쁨의 노래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그렇게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평화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평화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만나서 나누는 음식 위에 내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인 것이다. 선생님도 과학자도 마찬가지였다.
정보사회에서 지식은 더욱 공유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식의 원저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인터넷과 정보기술은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비싼 매체의 도움 없이도, 대형 교실과 칠판 없이도 나의 얘기를 들려줄 수 있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공유를 통해 새로운 얘기가 더해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려 나간다. 인터넷정신과 정보사회의 이상은 이와 같은 지식의 공유에서 실현될 것이다. HTML문법과 리눅스의 발전과정에서 보여졌던 오픈소프트웨어 공동체를 생각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