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장치시장이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시대의 도래에 맞춰 엄청난 정보를 보관, 관리해 주는 저장장치 수요가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저장장치는 컴퓨터의 주변장치로서 본체인 서버의 시장규모를 넘어설 정도로 전산시스템의 핵을 이루고 있다.
업계관계자들은 지난 97년 IMF 이후 꽁꽁 얼어붙었던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의 전산투자가 지난해부터 재개되면서 전반적으로 IT시장이 큰 폭의 성장세를 나타냈는데 그중에서도 저장장치시장이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또 저장장치를 둘러싼 환경이 갈수록 대용량 저장장치의 신규도입 및 증설을 요구하고 있어 저장장치시장은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호황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저장장치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들이 대규모 데이터처리가 필요한 ERP, 데이터웨어하우징, CRM 등을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웨어하우징이나 ERP의 경우 도입 초기에는 용량이 얼마되지 않지만 구축이 완료되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2∼3배로 데이터 양이 급증, 기업들로서는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저장장치의 도입을 늘릴 수밖에 없어 저장장치 수요확대를 이끌어가고 있다.
저장장치시장의 확대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는 인터넷시대의 도래로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나 애플리케이션서비스제공업체(ASP) 등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이들 업체가 인터넷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요구를 처리할 수 있는 대용량의 저장장치를 갖추는 게 선결과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형문 한국EMC 사장은 『저장장치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은 각 기업 스스로 정보시대에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 바로 정보라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라며 『기업이 커질수록 또 사업분야가 다양해질수록 관리해야 하는 정보가 많아져 저장장치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저장장치시장은 올해도 지난해에 비해 최소 50% 이상 늘어난 4500억원대를 형성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테이프드라이브시장도 2배 이상 늘어난 1000억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관련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이 확대되면서 시장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로는 일단 참여업체 수의 증가를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중대형 시장은 한국EMC,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등 일부 전문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한국IBM이 대대적으로 저장장치사업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한국HP,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컴팩코리아, 한국후지쯔 등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이 잇따라 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시장공략에 나선 것이다. 물론 시장규모가 확대되고 앞으로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대형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EMC가 데이터제너럴 인수를 계기로 올해부터 NT서버를 겨냥한 중소형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그동안 중소형 시장을 주로 공략해 온 한국IBM, 컴팩코리아 등은 한국EMC가 독주하고 있는 대형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저장장치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중대형 컴퓨터 업체와 저장장치 전문업체의 치열한 한판승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저장장치시장에서 단연 눈길을 모으고 있는 업체는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저장장치를 자체개발해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는 미국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국내 저장장치시장에서 지난해에만 250억원의 실적을 기록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나타냈으며 올해는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온 저장장치를 미국은 물론 일본, 유럽 등에 수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참여업체 수가 증가하고 필수적으로 업체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지난해 서버시장에 불어닥친 가격파괴 경쟁이 올해에는 저장장치시장까지 확산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가격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조짐은 지난해 연말부터 선발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한 후발업체들의 공세가 본격화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올해는 이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업체들의 수가 증가한 만큼 가격하락폭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업계관계자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저장장치시장의 또다른 변화는 대형화 추세다. 이미 수요자들이 도입하는 저장장치의 용량이 테라바이트를 넘어섰으며 인터넷사용자들의 접속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통신업체나 증권기관 등에서는 단일 규모로 도입하는 저장장치용량이 10테라급 이상으로 급격히 상승되고 있다.
특히 앞으로 한 기업의 데이터를 총괄하는 데이터센터가 속속 들어서고 서버통합 추세에 맞춰 저장장치의 통합도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저장장치의 대형화는 더욱 급진전될 전망이다. 저장장치의 개방화도 최근 저장장치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제조업체가 서로 다른 이른바 이기종 서버를 연결할 수 있고 유닉스뿐 아니라 NT서버도 하나의 저장장치로 통합해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개방형 저장장치분야에서 저장장치업체들이 경쟁업체와의 차별화를 통해 시장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방형 저장장치는 그동안 저장장치와 관련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확보하고 있는 EMC가 거의 유일하게 공급해왔지만 올들어서는 한국IBM과 한국HP, 컴팩코리아 등도 잇따라 이기종 서버와의 연결에 성공함으로써 시장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같은 저장장치의 개방화는 곧바로 여러 개의 저장장치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저장장치 전용 네트워크(SAN)로 확대발전할 전망이다.
SAN은 고객의 정보관리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음은 물론 데이터 관리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저장장치시장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국EMC, 한국IBM,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컴팩코리아 등 저장장치업체들은 국내 시장을 주도하고 자사의 SAN을 업계 표준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백업용 저장장치시장도 올해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되고 있다. 공급 업체가 워낙 많고 서버에 기본으로 장착되는 제품과 단일저장장치로 공급되는 시장이 확연히 달라 시장규모를 산정한다는 것이 힘들지만 단품으로 공급되는 중형 테이프드라이브 시장만 700억원 정도의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보여 총 1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지난해 테이프드라이브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엔터프라이즈급 제품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 중 하나인 저장장치텍이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맘모스2」를 개발한 엑사바이트사가 국내시장 공략에 나섰으며 소니의 「AIT」가 약진했다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장장치텍의 제품군은 한국저장장치텍의 전신인 컴텍을 통해 이미 공급돼왔고 「맘모스2」 역시 경쟁상대인 퀀텀의 DLT기반 라이브러리 시장이 워낙 두툼해 큰 변화는 유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만 소니 「AIT」는 공급업체수 면에서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성능이 우수하다는 점을 평가받아 학교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공급량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한국저장장치텍과 한국IBM, 한국HP 등 엔터프라이즈급 테이프드라이브 공급업체들의 치열한 경쟁만큼이나 중급형 테이프드라이브 시장의 변화가 뚜렷해질 전망이다.
특히 상반기 IBM과 HP, 시게이트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리니어 테이프 오픈(LTO)」기반 테이프드라이브가 본격적으로 출시돼 중상위급 시장에 포진함에 따라 국내 중형 테이프드라이브 시장도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관계자들은 퀀텀의 「슈퍼DLT」와 IBM, HP, 시게이트 연합진영인 LTO, 소니의 「AIT3」와 하반기 출시될 엑사바이트의 「맘모스3」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