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의 원래 이름은 삼능로다. 서울시가 지난 72년 한양 천도 578주년 기념으로 이렇게 이름붙였다.
삼릉은 강남구 삼성동 131번지 일대 조선왕조 9대 임금인 성종과 그 계비 정현왕후인 선릉과 중종의 정릉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서울시는 76년 닉페이 이란 테헤란 시장의 방한과 관련해 서울과 테헤란간 가로명 교환을 제의했다. 이듬해 삼능로는 테헤란로 바뀌었으며 여의도에 이미 있던 테헤란로는 다른 이름으로 개명됐다.
멀쩡히 있는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그 당시 우리나라의 외교에서 중동 국가는 매우 중요했다. 주력 산업인 건설의 중동 특수가 열렸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지난 70년대 테헤란로의 폭은 지금 그대로다. 다만 과수원과 채소밭이 있던 자리에는 고층 빌딩들이 빽빽이 들어섰을 뿐이다. 지금은 상습 정체도로인 8차선 도로는 개발 당시 주민들에게 쓸데 없이 큰 도로로 여겨졌다. 초기 테헤란로는 영동지구 도시계획에 필요한 건자재를 나르는 기간 도로였다.
『당시 테헤란로에는 밭농사하는 사람들이 지은 집 몇 채 빼놓고 길을 따라 건재상들만이 늘어서 있었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 발전했죠.』 지난 73년부터 줄곧 특허청 뒷편에서 살아온 부동산중개사 최규대씨(50)의 회고다. 그는 자신과 같은 원주민들이 지금도 역삼동 일대에서 몇몇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동지구 개발이 끝나면서 테헤란로의 건재상들은 하나 둘씩 건물로 바뀌었다. 또 이 지역에 살게 된 주민들이 땅값 상승으로 부유해지자 이들을 겨냥한 증권사 지점들이 테헤란로를 따라 속속 들어섰다.
돈이 넘치는 거리가 되면서 인근 지역도 자연스럽게 유흥가로 바뀌었다.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강남역과 역삼역 주변에는 룸싸롱을 비롯한 유흥업소가 번창했으며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흥업소 손님만 부동산과 주식투자로 떼돈을 번 졸부에서 코스닥 등록 등으로 부유해진 벤처 기업가들로 바뀌었다. 애초 영동지구를 계획된 시가지로 조성하려던 정부의 계획은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오피스와 주거지역, 유흥지역 등이 한 곳에 몰려 있는 시가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