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호 CCR 사장
70∼80년대 산업화가 한창일 때 소를 팔아 도시로 나가는 것이 하나의 붐이었다. 한평생 농사만을 업으로 삼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서울행」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꿈나무로 자란 세대가 지금은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새 천년이 인터넷 세상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인터넷 시대를 이끄는 기관차는 당연히 벤처기업이다.
인터넷으로 성공한 벤처기업이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진정한 가치가 얼마인가 하는 것이 사회적인 화두일 정도다. 하지만 과연 이들 벤처기업의 몸값이 진정한 가치인지의 여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J K 갤브레이스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1월 중순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증시상황은 투기열풍이 들끓었던 대공황 이전과 흡사하다』고 하면서 『번영이 계속된다고 낙관할 때야말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그는 인터넷으로 투기적인 주식매매를 반복하는 데이트 레이더가 급증하면서 투자신탁 운용자의 능력을 벗어날 정도로 엄청난 돈이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금의 과다유입도 문제지만 경영성적표도 문제라며 지난해 4·4분기 미국의 명성 높은 인터넷 기업들의 적자가 예상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아마존·밸류아메리카·e토이스·CD나우·비욘드 등 내로라하는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적으로 수익 모델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들에 「묻지마성」 투자자금이 몰렸다는 얘기다. 미국 나스닥 동향을 거의 실시간으로 따라가는 한국도 최근 엄청난 손실을 본 주식투자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인터넷업체의 사업 모델이 정말로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평가해보자는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월초에 새로 출범한 정부 경제팀의 수장의 첫 인터뷰에서 엿볼 수 있다. 코스닥시장이 과열이 아니라는 평가다.
그리고 벤처기업 중심의 시장 재편이나 코스닥시장이 이끄는 경제적 부가가치와 일련의 활동에 대해 「부의 재분배」를 위한 긍정적 과정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있다.
게다가 국가의 수장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벤처 육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상황이다.
또 이를 뒷받침하듯 대기업 회사원, 정부 공무원, 언론인 등 한 시대를 이끄는 엘리트들이 벤처기업으로 집단 탈출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21세기 벽두에 우리는 또 다시 산업화 과정 때와 같이 「아버지의 소」를 팔아 도시로 떠나는 꿈 많은 아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를 거머쥐고자 소를 팔아 상경하는 이들 가운데 과연 몇명이 살아남을지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