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칩과 히카리통신의 벤처 투자자금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벤처투자 양상이 한일간 자존심 대결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말 방한해 한국 벤처기업에 1000억원 투자의사를 밝힌 소프트뱅크 손정의씨에 이어 최근 옥션에 74억원을 투자한 히카리통신캐피털 등 일본 펀드의 유입이 가속되면서 이같은 한일간 대결양상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IMF 여파가 한창인 지난해 초 벤처캐피털은 국내 산업경기를 촉발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기업의 외자유치를 적극 독려할 때도 일본펀드의 한국 진출은 소극적이었다. 일본펀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성공에 대한 확신을 조심스럽게 타진만 했을 뿐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인터넷 경기와 벤처붐이 확산되면서 국내 인터넷 수준이 일본의 인터넷 수준을 능가하는 단계에 이르자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일본펀드」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정작 어려울 때는 뒷짐지고 돈이 된다 싶으면 앞장서는 「단감고토」식의 투자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말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적 투자가인 「손정의 칩」의 국내투자는 일단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일부 과장된 면이 많다』며 『이름값만으로 국내 벤처산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일본펀드 규모는 약 1500억원. 손정의 칩 1000억원과 히카리통신캐피털 500억원이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투자규모는 미지수다. 국내 인터넷산업의 활황 여부에 따라 투자는 더욱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식발표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펀드의 규모가 늘어난다 해도 현재 투자한 국내 펀드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펀드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은 소프트뱅크나 히카리 등 세계적인 펀드들의 국내진입이라는 측면이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를 받는 업체들에는 수혜가 되는 펀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업체들이 연합해 「반 손정의 펀드」까지 준비하는 등 국내 벤처캐피털업체들의 수성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장비업체인 미래산업은 올해 1000억원을 투입, 오는 3월 말 가칭 「미래인터넷기업백화점」을 설립하고 인터넷업체의 지분투자와 함께 벤처기업을 인큐베이팅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나라비전의 지분 17.35%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35억원을 투자했으며 통신 및 음성인식 SW 개발업체인 인피니티텔레콤(infinity.co.kr)에도 5억원을 출자, 18.03%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올해 말까지 20여개 업체에 지분인수형식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또 미래산업·메디슨·다우기술·새롬기술·다음커뮤니케이션·네띠앙·미래에셋자산운용투자자문·한글과컴퓨터 등 국내 인터넷업체 8개사가 모여 국민벤처펀드 「코리아 인터넷 홀딩스」를 26일 발족, 본격적인 외세막기(?)에 나섰다. 코리아 인터넷 홀딩스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1조원 규모의 대형 펀드를 조성해 인터넷업체 육성에 적극 나선다는 것이다. 이 펀드의 한 관계자는 손정의 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본격적인 일본펀드의 국내 진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경없는 인터넷비즈니스는 이해하지만 업체마저 해외자본이 독식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인터넷 강국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벤처기업이 국내 산업기반을 지켜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일본펀드의 국내 진입은 앞으로 가속될 전망이다. 인터넷의 확산이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한국만한 인터넷 시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중국진출 교두보로도 더없이 좋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인터넷의 활용도나 이용자의 질에서 일본보다 우위에 서있다. 여기에 중국의 반일 국민정서를 고려해 볼 때 우회시장을 찾아야 하는 일본으로서는 한국시장이 더 없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