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타령」이 애창곡인 조정남 SK텔레콤 사장에게는 칼날 같은 엄격함, 엄숙에 가까운 권위의식 등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묻어나는 정서를 좀처럼 느낄 수 없다.
그는 엄격함이나 권위의식의 대척점에서 서 있는 부드럽고 온화함, 털털한 성격 속에 감춰진 저돌성과 강인함이라는 단어가 더욱 어울리는 사람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카리스마형 지도자라기보다는 대중 정치인 성격의 리더십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조 사장은 정보통신 업계에서는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대학에서 정보통신 혹은 전자관련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이 분야에서 시작, 한 우물을 판 것도 아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그는 당시에는 이 과가 지금의 법학과보다 뛰어난 인재들이 모였던 곳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를 나왔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곳도 정유화학 업체인 SK(주)였다.
여기서 33년 동안 봉직, 잘 나가는 임원이라는 소리를 듣던 지난 95년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전신)으로 옮겼다. 그는 이를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말한다.
기라성 같은 전문가들이 버티고 있는 이동통신업계에 뛰어들었고 CDMA를 비롯한 정보통신과의 씨름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3년 만에 SK텔레콤의 정상,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배경을 보자. 그가 전무, 부사장을 거치면서 SK텔레콤은 세계 최대 CDMA 사업자로 컸다. 사장이 된 뒤의 성적표는 더욱 화려하다. 우선 회사의 주가가 3배 이상 뛰었다.
SK텔레콤의 주식을 일컫는 「황제주」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도 그의 작품이다.
외국인과 한국통신 지분이 만만치 않아 늘 고민거리였던 경영권도 타이거펀드의 지분을 사들여 안정화를 이루어냈다. 가입자는 벌써 1000만명을 돌파했고 얼마전에는 신세기통신을 전격 인수, 이동전화시장에서는 난공불락의 아성을 쌓았다.
그는 젊다. 41년생이니 물리적 나이만 따지면 「쉰세대」에 속한다. 지금도 차 안에서 흘러간 가요를 즐겨 들으니 HOT나 핑클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비즈니스에서만은 그는 정확한 신세대다. 최첨단, 최신 마케팅 기법이 춤추는 이동전화 시장에서 그가 보여준 일련의 시장 공략 방법은 이를 입증해준다.
TTL이 상징적이다. TTL은 신세대 감성에 호소한 계층 마케팅의 최대 히트 사례다. 사회적 신드롬까지 낳으면서 신규 가입자를 거의 싹쓸이하고 있다. 그는 불가피한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기업 경영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할 정도다.
전략적 사고에 의한 기업 경영은 20∼30대 MBA 출신도 고개를 숙인다. 이동전화 시장 전체 판을 꿰뚫면서 차례로 내놓는 SK텔레콤의 카드는 늘 후발주자들에게는 「아차」하는 아쉬움을 던져준다. 기술적으로도 마찬가지.
IMT2000에 가장 먼저 집착, 연구개발 능력을 NTT도코모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조 사장의 이력과 경영수완을 훑어보기만 해도 당장 알 수 있다. 그가 욕심(좋은 말로는 추진력, 조직 장악력, 업무 성취도 등을 의미한다)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 사장이 자신의 욕심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은 개인적 퍼스낼리티가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한다. 스탠드 얼론 타입의 연구원이라면 모를까, 비즈니스맨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런데도 술 때문에 그에게 인간관계가 부족하다거나 「쩨쩨한 샌님」이라고 비아냥대는 사람은 없다. 그의 대인 친화력은 지금 당장 정치판(?)에 뛰어들어도 될 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위트와 재기가 넘친다. 여기에 엄청난 달변이다. 자신의 의사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으면서도 조리있게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어떤 모임에서건 분위기를 압도한다. 어떤 이는 폭탄주를 돌리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적능력을 과시하면서 모임을 주도하지만 조 사장은 순간순간의 위트로 모임의 화제를 선점해나간다.
그룹의 경영전략을 논의하는 사장단 회의에서조차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거나 지루하면 유머와 위트로 분위기를 바꾼다고 한다. 어지간한 「경지」(예컨대 상황 판단력, 자신감 등등)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그는 곧잘 해낸다.
부하건 동료건 상사건 조 사장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부담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속마음을 털어놓고 직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역시 주위의 사람들을 아껴주려 노력한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 덕장이라는 말은 그래서 따라 붙는다.
조 사장이 꼽는 일생일대의 실수는 미국 유학을 포기한 것이고 업무 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은 청탁 목적의 외부 손님을 웃으며 모시는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며 특기는 골프와 기계체조라고 한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