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70년대 세계 전자산업을 주도했던 가전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컴퓨터와 정보통신에 그 왕좌를 물려주고 첨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정보가전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해 전자산업의 왕좌를 되찾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정보가전은 과거 아날로그 방식의 가전제품을 단순히 디지털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전은 컴퓨터·정보통신·인터넷과 융합되면서 이들을 총괄하는 중핵으로 자리잡아 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차세대 가전분야를 지칭하는 용어로 디지털 가전, 네트워크 가전, 정보가전 등이 함께 사용되고 있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 용어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디지털 가전이란 기기의 신호체계가 아날로그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된 제품군을 뜻한다. 콤팩트디스크(CD)·미니디스크(MD)·디지털카메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네트워크 가전이란 정보통신망에 연결돼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한 가전제품의 개념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선보인 인터넷TV가 대표적 예다. 정보가전은 콘텐츠 서비스와 융합된 시스템을 말한다.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수신받는 전자레인지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정보가전이라고 말하면 앞에서 말한 세 가지 개념을 모두 합친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케이블 등 정보네트워크와 연결돼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방식의 가전제품을 정보가전이라 할 수 있다.
정보가전은 지금껏 개별제품으로 취급돼 왔던 TV·캠코더·카세트·VCR·PC 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음악·영상·데이터 등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정보가전 제품을 처음 개발한 일본을 선두로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정보가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일부터 나흘 동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생활전자박람회(CES 2000)와 16일부터 19일까지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Houseware Show)에는 디지털 기술을 채택한 정보가전제품이 대거 출시됐다.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뚜렷한 구분이 가능했던 가전과 컴퓨터·통신의 벽을 허물고 이들이 하나로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전시회에는 가전업체뿐 아니라 컴퓨터·정보통신 업체들도 정보가전과 관련된 제품을 대거 출시하는 등 정보가전 열기가 뜨거웠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주요 가전업체들은 일반 가전에 인터넷 기능을 적용한 신제품을 개발, 올해 안에 시장에 내놓는 등 정보가전 시장 선점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존 TV에 인터넷 세트톱박스를 내장한 인터넷 TV를 오는 2·4분기 중에 출시하고 컴퓨터와 TV 기능을 함께 갖춘 인터넷 냉장고도 개발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액정표시장치(LCD) 화면을 채택, 인터넷과 동영상 전화통화 기능을 갖춘 디지털 냉장고를 개발, 올 상반기 중 출시하고 인터넷으로 조리 정보를 제공받아 스스로 요리하는 인터넷 전자레인지도 최근 개발,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이들 제품 외에도 오디오·보안기기·냉난방기 등 기존 가전제품에 인터넷 접속기능을 추가하는 작업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