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연구개발투자의 70% 이상을 분담하면서 사실상 국가연구개발투자를 주도해온 현대·삼성·LG·SK그룹 등 민간기업들이 올들어 연구개발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나선 것은 신제품·신기술 개발 등 연구개발투자를 기업 생존전략 차원에서 확대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필연성 때문이다.
IMF 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구조조정 등과 맞물려 잔뜩 몸을 움츠려야 했던 대기업들이 경기회복세를 실감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이상 연구개발투자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기술개발에만 매달려 왔던 우리 기업들이 IMF를 겪으면서 독자적인 원천기술 확보 없이는 21세기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조조정이라는 큰 흐름에서 연구개발투자보다는 부채비율 축소 등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던 기업들이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됨에 따라 그동안 유보했던 연구개발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기업들의 양적 확장 우려」 발언과 함께 정부의 민간부문 연구개발투자 확대요구를 같은 맥락에서 해석, 사업확장용 투자계획을 연구개발투자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재계는 나름대로 지난해 말 확정했던 투자계획 중 연구개발투자 규모를 늘리기 위해 고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연구개발투자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 있던 기업들은 정부의 민간기업 연구개발투자 확대요청에 세제감면, 금융지원 등을 요청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 민간부문 연구개발투자 7조1380억원 중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4대그룹을 비롯한 대기업의 연구개발투자 규모도 6조6292억원 수준보다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중소 벤처기업의 연구개발투자 확대는 정부의 벤처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시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전기·전자·통신과 자동차부문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서 연구개발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더욱 고무적인 현상은 대기업이나 벤처기업 할 것 없이 그동안 연구원 감축을 만사로 여겼던 것과는 달리 올해 상당 부문에서 연구인력을 신규 채용할 계획을 갖고 있는 점이다.
박사급 연구인력 채용은 지난해보다 24.7% 이상 높아지고, 석사급 연구인력도 10.8% 늘어나는 등 과거 학사급 중심의 인력채용 구조에서 석·박사 중심의 인력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또 중소 벤처기업의 경우 박사급 연구인력을 지난해보다 56.4% 늘리고 석사급도 40.8% 늘리는 등 연구개발이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는 중소 벤처기업의 대폭적인 신규 인력채용이 기술개발에 필요한 인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기술개발보다는 핵심기반기술연구투자라는 질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기협 이동주 조사역은 『IMF체제를 겪으면서 연구개발투자를 소홀히 하거나, 독자기술력 확보보다는 기술도입에 의존해온 기업의 파산이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지적하고 『연구개발투자의 양적인 팽창도 중요하지만 3∼4년 이상을 내다보고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창훈기자 chjung@eten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