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특별대담> 서정욱 과학기술부 장관

새 천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새 천년의 화두인 지식기반사회의 한 중심에는 과학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기술은 그래서 그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온고이지신」은 새 천년 과학기술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새 천년에 걸맞은 국가연구개발 방향이 요구되고 있다. 서정욱 과학기술부장관은 『새 천년에는 무엇보다 대학이 중심을 바로잡고 제기능을 다해야 나라가 산다』고 주문했다. 또 『과학기술계 원로들이 21세기를 이끌어갈 30·40대 후배 과학기술자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며 『연구비나 연구공간, 연구과제 등을 이들에게 양보하는 게 자신을 포함한 1세대 과학자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새 천년의 중심에 선 서정욱 장관을 박광선 기술산업부장이 만나봤다.

<편집자>

 -벌써 장관에 취임하신 지도 어느 덧 1년이 다가옵니다. 과학기술자 출신인 장관에게 걸었던 기대도 상당했었는데 뒤돌아 보면 어떻습니까.

 ▲막상 행정부에 들어와 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정책결정 하나하나에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그동안 거창한 계획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장관의 몫은 같은 목표라 해도 사업추진방식 등이 왜곡되어 있으면 이를 상식선으로 바로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덕연구단지를 산·학·연 공동복합단지로 육성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으며 대덕연구단지에 기대를 걸어도 좋습니다. 또 아리랑1호의 발사성공과 우주센터건설 등 우주산업기반을 다졌다는데도 보람을 느낍니다.

 -올해가 지식기반사회로 진입하는 원년이라고들 합니다. 지식기반사회의 중심에는 정보와 과학기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21세기 국가과학기술 비전은 무엇이고 목표는 어딥니까.

 ▲김대중 대통령께서 연초에 있었던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국가연구개발투자의 확대, 과학기술인 우대방안 마련 등 과학기술력 향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차원의 발전비전인 「2025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 장기비전」을 확정했습니다. 2025년 세계 7위권의 과학기술강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생명과학, 정보, 재료, 에너지, 환경, 메카트로닉스, 기초원천분야 등 7개 분야를 전략분야로 선정하여 집중투자해 나가자는 계획입니다.

 계획대로라면 2014년에 AIDS치료제가, 2016년 경에는 감성컴퓨터가 개발되고, 2025년에는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인터페이스가 개발될 것입니다. 물론 전제는 과학기술발전을 민간이 주도하도록 하며, 투자도 세계적, 장기적인 시각에서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우리의 연구개발투자규모를 감안하면 「선택과 집중」원리를 연구개발에도 도입해야 할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국가연구개발정책에 있어서 집중화, 즉 중점지원이냐 아니면 저변확대냐 하는 문제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위한 가용자원, 기술수요 및 경제사회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사항입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 국가경제발전이라는 목표아래 연구개발의 저변확대에 주력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간의 연구개발비가 국가전체 연구개발비의 80%에 가까운 지금의 현실에서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국가연구개발목표에 맞는 대형 국책프로젝트의 비중을 높여 나가야 합니다.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중점국가연구개발사업 등 첨단기술과제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기초과학연구지원사업 등 장기적인 투자사업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앞서 말씀하셨듯이 반도체, CDMA기술 등은 세계적으로 내놔도 손색없는 우리의 자랑스런 기술입니다. 21세기에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육성해야 할 분야가 어디라고 보십니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21세기 중점육성분야로 정보, 환경, 생명·의료, 에너지, 메카트로닉스 기술 등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구재정이나 기술수준 등 여러 가지 여건상 모든 기술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특정분야에 선별투자하는 기술개발전략이 필요합니다. 우리 정부는 선진국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연구개발에 착수한 생명공학, 뇌과학 분야와 신소재, 신물질·신의약 분야, 비메모리반도체 분야, 우주기술 등을 전략적으로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올해에는 유전자기술개발, 나노기술개발사업과 같은 전략기술분야에 500억원의 연구비가 집중 투자됩니다.

 -얘기를 좀 바꿔 지난해에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을 놓고 당정간에 진통이 있었습니다.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과학기술기본법은 21세기 우리 과학기술의 모습을 결정지을 과학기술헌법입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과학기술 부문의 정책철학 등을 담아야 한다고 봅니다. 연구용역결과를 토대로 90여 개에 이르는 관련법령과의 연계성을 검토중입니다.

 -최근 대덕연구단지주변엔 애써 개발한 기술들을 훔치거나 연구원을 스카우트하려는 산업스파이들이 100명 이상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몇 년씩 걸려 개발한 연구결과들이 경쟁국이나 경쟁기업에 빼앗긴다면 이는 국가안보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연구개발과 관련된 보안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습니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과학기술자로서 우리 기술수준이 훔쳐갈 만큼 높아졌다는 의미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원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들이라고 봅니다. 96년부터 「특정연구개발사업 보안관리지침」이라는 것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열명의 경찰이 한명의 도둑을 잡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보안관리지침이 보다 더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적용되도록 현재 지침을 개정중에 있습니다. 출연연은 물론 민간연구소들도 연구원 자체가 연구성과인 만큼 이들을 우대하고 이탈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대덕연구단지는 벤처창업전진기지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장관께서 취임 이후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대덕연구단지 활성화에 주력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덕연구단지는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뒤늦은 감이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존의 교육·연구 중심단지에서 산·학·연 협동중심단지로 변화됩니다. 지난해 「대덕연구단지관리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연구결과를 실용화하기 위한 시설도 입주가 가능합니다. 정부는 앞으로 대덕연구단지내 유휴부지를 최대한 활용해 입주를 희망하는 첨단벤처기업들의 입주를 적극 지원하고 KAIST의 신기술창업지원단을 벤처보육의 거점기관으로 육성하는 등 연구단지내 벤처보육센터를 8개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투자도 다른 부문처럼 민간비중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전경련회장단을 만나 민간부문의 연구개발투자를 늘려줄 것을 요청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민간부문의 연구개발투자가 국가전체 연구개발투자의 75%선에 이르는 등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주무장관으로서 민간기업의 연구개발투자를 독려하는 이유는 연구개발투자야말로 가장 수익성이 크고 회수가 보장된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재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적극 공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기업들 스스로가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구개발투자를 늘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재계대표들은 민간의 연구개발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세제·금융상의 인센티브 마련을 요청해 왔습니다.

 정부는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 중 기업배정인원을 늘리고 기술 및 인력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폭 확대를 검토할 계획입니다. 올해에도 500억원규모의 벤처기술펀드인 MOST3호 신기술투자조합을 결성하고 과학기술진흥기금에서 2500억원을 확보해 융자해줄 계획입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올해에도 박사학위 예정자의 20%는 취업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 과학기술인력수급계획에 뭔가 잘못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IMF 여파에 따른 것으로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과학기술 추이가 급속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지요. 2∼3년 단위로 검토해 오고 있으나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인력수급계획 마련을 위해 현재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중장기적 인력수급문제를 검토중입니다. 6월경 연구결과가 나오면 고급인력 수급 및 활용정책 등을 마련해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올해에도 약 1400명의 미취업 과학기술인력이 인턴연구원과 과학기술지원단으로 활동합니다.

 -최근 NGO들의 정치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과학기술계에서도 이번 총선에서 만큼은 확실하게 몫을 챙기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과학기술자들이 예산을 쥐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 일정부분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게 소신입니다. 그러나 꼭 정치권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권이 30·40대 젊은 과학자들의 업적을 보고 느끼게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권을 상대로 아무리 기초과학이 중요하다고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국가적인 이미지나 과학기술수준을 다른나라가 달리 평가하게 되고 그 나라 상품의 가치를 눈에 보이지 않게 높여 줍니다. 정치권에 이런식으로 접근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최근 산자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젓가락론을 들어 부처간 정책협력을 강조하셨는데 부처간 협력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한마디로 「양화의 양면」이 되자고 했지요. 「악화의 단면」으로는 안된다는 거지요. 산자부 장관께서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얻자고 말씀하신 만큼 과거와는 달리 유관부처간 협력이 잘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정통부와도 마찬가지고요.

 -출연연 개혁작업을 끝낸 지도 1년이 다되어 가는데 정부 개혁정책이 성공한 것으로 봐야 합니까.

 ▲출연연 구조조정은 시작과는 달리 실체를 제대로 손대지 못하고 인원감축 등 용두사미격으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연구원들이 구조조정으로 연구소를 떠나 벤처창업 등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연구원들도 바깥 세상을 보고 벤처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상품화가 되지 않는 논문 100편을 쓰는 것보다는 테헤란로에 있는 벤처기업인처럼 연구개발비를 회수해야겠다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합니다.

 -최근 강연에서 나라가 살려면 대학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미국이 오늘날 경제대국이 된 배경에는 대학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일본의 경우 대학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해 국립대학이 무너진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미국 대학들은 밀레니엄을 앞두고 21세기에 뭘 할 것인가를 준비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같은 아카데미라 해도 유럽사람들은 귀족과 천재가 주도하는 기초과학에 치중한 반면 미국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팀워크를 통해 노벨상을 탈 수 있는 미국형 기초과학을 추구했습니다. 오늘날 결과는 어떻습니까. 미국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사례에서 보듯 산학연계를 통한 기초과학에 치중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우리 대학들도 산학협동차원을 넘어 대학이 산업기지화되어야 합니다.

 -E메일을 통해 현장 연구원들의 의견들을 청취하고 계신다는데 도움이 좀 됩니까.

 ▲정책의 투명성을 위해 과기부 홈페이지를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현장 연구원들로부터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들어 옵니다.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하고 연구원들이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말을 못하고 있구나 하는 것들이 느껴집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될수록 모든 게 투명해지리라 봅니다. 이와 같이 연구원들과 직접 대화를 하는 노력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자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정책에 즉시 반영할 수 없는 좋은 아이디어들은 꼭 다음에 반영합니다.

 -IMF체제로 한동안 주춤했던 과학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가 정부는 물론 민간부문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만 투자에 대한 효율성에는 서로 다른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냉정하게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현주소는 어디에 와있습니까.

 ▲지난 세기동안 우리 과학기술은 거의 황무지 상태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반도체, TFT LCD, CDMA, 체세포복제기술 등은 세계적으로로 톱 수준입니다. 과학기술역사가 짧아 기초과학·기계·항공·우주·해양 등 거대 과학분야는 아직도 기술격차가 있으나 역사가 짧은 전자·통신·반도체·SW·생명 분야는 선진국을 거의 따라잡고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선진국의 70%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리=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