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코스닥 주요 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나스닥의 영향이 아니라 사실은 벤처기업들의 기세를 꺾어 놓기 위한 대기업과 기관들의 장난이라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연초 코스닥 시장이 하락세를 거듭할 때만해도 미국 나스닥 폭락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거나 대우 환매체 부담, 혹은 코스닥의 거품이 제거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따라 다녔지만 최근에는 벤처기업들을 죽이기 위한 대기업 음모론이 하나 덧붙여지고 있다.
증시 주변이나 벤처기업가들 사이에서 은밀히 떠돌아 다니는 대기업 음모론의 실체는 이렇다. 코스닥 열풍이 불면서 일부 벤처기업의 시가 총액은 30대 재벌을 능가하는 수준으로까지 치솟고 이같은 바람에 편승, 기존 대기업의 우수 두뇌들이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이직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게다가 예전 같으면 대기업에 집중될 자금마저 벤처기업에만 몰리니 대기업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자금과 인력이 벤처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로서는 자연히 사상 초유의 위기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이쯤에서 벤처 열풍을 적당히 잠재워야 필요성이 있고 그 대안 가운데 하나로 코스닥 하락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설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최근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비인터넷 분야의 대기업들은 벤처 거품에 대한 직접 경고에 나섰고 벤처쪽은 대기업이 아직도 아날로그 사고에 젖어 있다며 반박, 논란이 한창이다.
증시라는 것이 워낙 말도 많고 루머도 많은 곳인지라 대기업 음모론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음모론은 역설적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벤처와 대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결코 도산이나 실패 없이 코스닥에만 올라가면 일확천금하는 벤처불패 신화는 벤처의 원 개념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기현상이다. 거품도 마찬가지. 아무리 성장성과 미래 수익성을 중시한다 하더라도 요즘의 벤처 태풍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벤처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대기업도 정부도 아니다. 오로지 시장의 힘이다. 시장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는 점치기 어렵지만 결정의 순간이 멀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때쯤이면 대기업 음모론의 진위도 밝혀질 것이다.
<정보통신부·이택기자 etyt@etnews.co.kr>